이 기사는 03월 13일 16:2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회사에 대한 이해와 전체적인 문제 진단없이 체질부터 고친다는 것은 무모한 짓입니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2015년 9월, 당시 전략 컨설팅 업계에선 전례없는 '큰 장'이 섰다. 인수금액만 7조2000억원에 달했던 홈플러스의 인수후통합(PMI)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다. 홈플러스가 보유 중인 자산과 인력 규모 등을 고려할 때 컨설팅 업계에선 이번 프로젝트만 따내면 향후 10년은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란 이야기가 돌았다. 일반적인 PMI 프로젝트는 반년이면 마무리됐지만, 홈플러스 프로젝트는 수년간 지속될 것이란 이야기가 돌았다.
당시만해도 전략컨설팅사 베인앤드컴퍼니 내부에선 자신감이 가득했다. 인수를 두고 MBK파트너스와 경쟁했던 어피너티·KKR 컨소시엄의 밸류업 자문을 도우면서 회사에 대한 스터디는 누구보다 먼저 면말하게 끝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당시 베인 측은 석달간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동고동락하며 홈플러스 변화를 위한 '8개의 핵심 계획(key Initiative)'을 만들었다. 신선식품에 특화한 사업 모델을 기반으로 근거리 배송 확대, 매장 리모델링 등을 통해 회사의 체질 변화에 성공하면 상각전영업이익(EBITDA)를 2000억원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MBK파트너스가 계약 당일 밤 약 3000억원을 더 베팅하면서 KKR·어피너티를 제치고 홈플러스를 품자 베인은 곧바로 MBK파트너스를 찾아가 홈플러스 핵심 계획을 경영진 앞에서 발표했다. 컨설팅사를 '지지고 볶기'로 유명한 KKR 어피너티 밑에서 뼈를 깎아가며 만든 보고서였던만큼 자신감도 넘쳤다.
하지만 결과는 맥킨지의 압승이었다. 맥킨지는 미국 본사의 저명한 백인 유통산업 전문 컨설턴트를 초빙해 PT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회사에 대한 면밀한 진단 없이 수술대에 올리는 것은 큰 패착이라고 MBK 경영진을 설득했다. 이같은 PT 발표에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도 박수를 치며 만족해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2016년부터 맥킨지가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수년간 '진단 프로젝트'가 가동됐다. 이 비용으로만 100억원 가량 쓰인 것으로 알려졌다.
첫 단추부터 어긋난 홈플러스 '밸류업'
MBK파트너스는 맥킨지의 조언에 발맞춰 홈플러스의 첫 CEO로 김상현 전 P&G 아세안 총괄사장을 임명했다. 홈플러스 합류 직전 글로벌 생필품 기업인 P&G에서만 거의 30년 근무한 김 총괄은 '마케팅의 신'으로 불릴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MBK 측에서 천문학적인 연봉을 제시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PEF업계에선 M&A 성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순간을 주저없이 첫 CEO 선임으로 꼽는다. 이때부터 MBK의 패착이 두드러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오프라인 유통 마케팅 업무에만 30여년을 종사해온 수장 아래에서 홈플러스는 원가절감 등 근본적 경쟁력을 갖추기보단 마케팅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글로벌 조직문화 도입, 해외 인재 영입 등 그야말로 P&G 문화를 흡수하는데 역량을 쏟았다. 당시 스멀스멀 성장하는 쿠팡을 위시한 e커머스 업체들의 도전과 이로 인한 유통업계의 위기감은 뒷전이었다. 경쟁사인 이마트마저 대형 마트산업의 위기감을 느끼고 '트레이더스' 도입을 시작했지만 홈플러스는 그정도 대응도 못했다. 김 총괄 역시 자신의 커리어에 오점을 남긴 채 1년 반만에 홈플러스를 떠나야했다.
MBK파트너스가 '진단'비용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고 시행착오로 수 년을 더 소모한 뒤에야 맥킨지의 진단결과가 담긴 보고서가 나왔다. 하지만 막상 보고서 내용은 신선식품·근거리배송 등을 통해 잠재력 있는 e커머스 시장에 대응해야한다는 수년전 베인의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시행착오로 날린 공백기간 회사의 자금도 마르면서 홈플러스는 비용 절감 기조에 돌입했다. 정작 맥킨지가 내놓은 보고서의 조언을 적용하기까지도 그로부터 수년이 더 흘러야 했다.
천재들의 대실패
홈플러스의 경영실패를 두고 PEF업계에선 전형적인 '천재들의 실패'를 대표하는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MBK파트너스에 입사하기 위해선 대부분 전략컨설팅, 투자은행, 로펌에서도 손꼽히는 '에이스' 자리를 놓치지 않아야한다. 이렇게 입사한 인재들은 현장을 찾거나 임직원과 스킨십을 넓히는 대신 회의실에서 밤을 세운다. 롯데 카드의 경영권을 인수한 직후 한 층에 정수기를 몇 대를 놔야 효율적인지를 두고 회의를 벌인 사례가 대표적인 일화다.애초 홈플러스 인수를 기업 경영권 확보가 아닌 '부동산 금융'으로 접근했던 MBK파트너스의 기조도 집단지성의 실패였다. 알짜 부동산에 위치한 매장은 부동산 급등기에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고 나머지 오프라인 자산들은 묶어서 리츠로 자금을 회수하면 조기에 원금 이상을 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혹시나 부동산 경기가 꺾이더라도 매년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보여온 오프라인 유통 산업이 변동성을 받쳐줄 것이란 계산이 섰다.
문제는 인수 직후 상업용 부동산과 유통경기가 동시에 하락기를 맞으면서다. 일반적인 기업 경영권 인수처럼 촘촘한 밸류업 계획과 경쟁력 강화방안이 없었다. 하필 홈플러스의 리츠 상장 시기부터 기관들이 리츠에 대한 깐깐한 검증을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상장 계획도 물거품으로 끝났다.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 처한 경영환경이 사실상 '천재지변'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었다는 관전평도 있다. 매년 수천억원대 적자를 쏟아내며 생존을 의심받았던 쿠팡은 소프트뱅크라는 막대한 지원군에 힘입어 무차별적인 가격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때마침 겹친 코로나19로 e커머스가 급성장하고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쇄락이 가속화된 점도 전문가들의 예측 영역을 넘어선 이벤트였다는 시각이다. PEF가 대주주인 홈플러스의 특성상 감수해야했던 페널티도 만만치 않았다. 경쟁사인 롯데, 신세계 등 유통 공룡들은 인력과 매장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여왔지만, MBK 입장에선 꺼낼 수 없는 카드였다. 되려 2019년엔 1만4200명가량의 무기계약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PEF에 대한 노조와 정치권 및 여론의 반감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모멘텀 전략
MBK파트너스의 위기는 비단 홈플러스가 끝이 아니다. "앞으로 먹거리는 IT에 있다"는 김 회장의 지시에 따라 2022년 IT 가격비교업체인 다나와를 운영하는 커넥트웨이브를 인수했다. 인수 과정에서 또다른 상장사이자 역직구 업체인 코리아센터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이를 통해 커넥트웨이브를 인수한다는 창의적인 거래 구조를 고안했다. 소비자들이 더이상 다나와가 아닌 쿠팡을 통해 PC를 구입하는 기조가 짙었지만 '창의적 금융 구조' 앞에서 기본적인 산업 분석은 뒷전이었다. UCK와 함께 인수한 구강스캐너기업 메디트, 스카이레이크로부터 인수한 넥스플레스 등도 김 회장의 IT 포트폴리오 강화 지시에 따라 잇따라 인수했지만 인수 직후 실적이 수직낙하했다.PEF업계에선 '맏형격'인 MBK파트너스가 위기를 넘기기 위해선 PEF 본연의 기업가치 개선 전략에서 압도적인 역량을 증명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좋은 회사를 비싸게 인수하고, 금리 인하로 유동성이 풀린 시기 이 회사를 더 비싸게 팔아 수익을 거뒀던 그동안의 '모멘텀 투자' 전략은 폐기할 때가 됐다는 분석이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4~5년 전 전례없는 유동성 파티에서 규모를 키웠던 PEF들이 환경 변화로 고전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며 "결국 PEF 본연의 압도적인 기업가치 개선을 통해 능력을 증명하는 게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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