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필옵틱스, 켐트로닉스, 이오테크닉스, 에스이에이, ISC 등이 유리기판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둘러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이 유리기판으로 확대되면서 협력사인 소부장 기업들도 개발 경쟁에 나선 것이다.
유리기판은 HBM 같은 칩과 반도체기판(PCB)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인터포저) 및 주기판(서브스트레이트)에 실리콘 대신 유리를 사용한 것을 뜻한다. 유리는 실리콘보다 열에 강해 고열로 인한 휨 현상이 적다. 이 때문에 고용량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AI 반도체 제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리기판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전력 소모는 30% 줄이면서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높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기업들은 유리기판의 약점인 내구성 문제를 극복하는 데 주력해왔다. 유리기판을 상용화하려면 유리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촘촘한 회로를 만드는 유리관통전극(TGV)을 안정화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유리는 충격과 압력에 약해 구멍을 뚫는 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 TGV 장비 개발에 뛰어들었다. 필옵틱스는 고정밀 레이저 기술을 활용해 세계 최초로 TGV 장비를 개발한 데 이어 레이저로 유리기판을 개별 칩 단위로 자르는 절삭(싱귤레이션) 장비를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처음 공급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등에 레이저 공정 장비를 납품하는 이오테크닉스와 식각 분야 대표 회사인 켐트로닉스도 내년 절삭 장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소재·부품 업체들은 유리기판 맞춤형 제품을 개발 중이다. 와이씨켐은 식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기판의 균열을 막는 특수코팅제 등 4개 핵심 소재를 개발해 연내 상용화할 계획이다. 테스트 업체 ISC는 최종 패키지 공정을 마친 반도체의 불량 여부를 판단하는 테스트 소켓을 개발해 상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업계는 기술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 수율을 잡는 업체가 시장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고 있다. SKC는 올해를,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는 2026~2027년을 각각 상용화 시점으로 제시했다. 인텔의 상용화 목표 시기는 2030년이다.
시장조사기관 퓨처마켓인사이트는 유리기판 시장이 지난해 23억달러(약 3조3000억원)에서 2034년 42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 경쟁의 승자가 초미세공정이 요구되는 첨단 반도체 경쟁의 판도를 흔들 수 있다”며 “잘 깨지는 유리의 한계와 대량 양산에 따른 수율 저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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