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시지는 ‘위기의식’으로 시작한다. 이 회장은 “21세기를 주도하며 영원할 것만 같던 글로벌 30대 기업 중 24개가 새로운 혁신 기업에 의해 무대에서 밀려났다”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1999년 말 기준 글로벌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작년 말에도 리스트에 오른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 엑슨모빌, 월마트, 홈디포, 프록터앤드갬블(P&G), 존슨앤드존슨(J&J) 등 6개뿐이다. 노키아, 인텔 등 최강 정보기술(IT) 공룡조차 엔비디아(1999년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 같은 신흥 강자에 밀렸다. 삼성도 뒤로 밀린 24개 기업처럼 될 수 있다고 이 회장은 걱정했다. 그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경제와 산업을 선도해야 할 삼성전자는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삼성의 현실을 두고 냉정한 평가가 이어졌다. 그는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고 과감한 혁신과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다”며 “위기 때마다 작동하던 삼성 고유의 회복력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회장의 걱정에는 이유가 있다. 주력 제품 점유율이 일제히 하락해 ‘근원 경쟁력’을 의심받고 있어서다. 삼성전자의 세계 TV 점유율은 2023년 30.1%에서 2024년 28.3%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스마트폰(19.7%→18.3%), D램(42.2%→41.5%)도 하락했다. 삼성 임원 교육에 ‘외부 전문가들이 바라보는 삼성의 위기’ 프로그램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자리에선 “실력을 키우기보다 ‘남들보다만 잘하면 된다’는 안이함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안팎에선 이 회장의 메시지에 대해 “이 선대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했다. 이 선대 회장은 1993년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가전 매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에 밀려난 삼성전자 가전을 목격하고 위기의식을 불어넣기 위해 강도 높은 임원 회의를 열었다. 5개월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전자의 품질 불량 실태를 적나라하게 담은 일본인 고문 후쿠타 다미오의 ‘경영과 디자인’ 보고서를 읽고는 전 임원을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말했다. ‘삼성 신경영’ 선언이었다. 이후 질(質) 위주 경영에 나서 강도 높은 혁신을 이끌며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 회장이 강도 높은 혁신 메시지를 내놓은 만큼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후속 인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회장은 “성과는 확실히 보상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신상필벌이 삼성의 오랜 원칙”이라며 “필요하면 인사도 수시로 해야 한다”고 했다. 산업계에선 오는 5~6월께 조직 개편과 사장단 인사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황정수/김채연/박의명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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