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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의 핵심이 '지배구조 개혁'인 이유

입력 2025-04-03 06:02   수정 2026-03-13 10:20

[한경ESG] 러닝 - ESG와 밸류업 ⑥


워런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가 인수한 60여 개 기업의 CEO를 교체했지만, 공개 캠페인이나 주주제안, 위임장 대결 없이 이를 이뤄냈다. 그의 방식은 ‘친근하면서도 간섭하지 않는 소유권 행사’로, 지배구조가 우수한 기업에 투자한 뒤 간접적으로 변화를 유도하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버핏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주주행동주의가 확산하는 한국 자본시장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기업의 장기적 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단기적 개입을 넘어 지배구조 개선을 촉진할 수 있는 자본시장 구조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국제적 주주행동주의자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적으로 243건의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이 벌어졌으며, 이 중 미국이 115건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66건이 보고됐는데, 이는 유럽(48건)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주주행동주의 사례는 2015년 13건에서 10년 만에 5배 가까이 증가했다.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DMI)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적으로 주주행동주의의 타깃이 된 기업은 총 1028개에 달했으며, 이 중 미국이 58%를 차지했다. 일본과 한국은 이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으며, 한국의 주주행동주의 타깃 기업 수는 최근 3년간 평균 34.7% 증가해 일본(13.7%)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한·일로 몰리는 행동주의 투자자들

한국과 일본 기업이 행동주의 투자자의 주요 타깃이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많은 기업이 장부가 이하로 거래되거나 과도한 현금을 보유하는 등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된 ‘가치 격차’가 존재해 행동주의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평가된다. 또 한국과 일본 정부가 기업가치 제고를 목표로 증시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는 점도 주주행동주의를 촉진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와 함께 중화권 기업과 비교할 때, 한국과 일본 기업은 지배주주 일가의 우호 지분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주주들이 의결권을 통해 경영에 개입하기 용이한 구조적 특징을 지닌다.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전 세계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의 주요 목적을 인수·합병(M&A)으로 해석한다. 주주제안을 통해 새롭게 이사회에 진입한 이사의 수가 행동주의의 주요 성과 지표로 활용되며, 이는 한국에서 통용되는 ‘경영권’ 변화와도 연결된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주주행동주의는 보다 넓은 개념인 주주관여(engagement)에 가깝다.

한국 시장에서 주주관여의 주요 주체는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 연대로, 글로벌 행동주의 투자자들과 차이가 있다. 국내 주주의 주요 요구사항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이며, 이는 ‘약식 주주관여’로 분류된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는 기업 매각, 사업부 분할, 합병 등의 요구가 주를 이루며, 이사회의 개편을 통해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또 한국에서 소액주주의 주주관여가 활발한 이유는 국내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원칙) 이행이 상대적으로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주요 시장에서는 기관투자자들이 장기적 기업가치 창출을 목표로 주주행동에 적극 나서는 반면, 한국에서는 이러한 역할을 개인 소액주주들이 대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거버넌스 개선, 밸류업의 기반

한국 기업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자본 배치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이 추진하는 ‘자본비용과 주주를 의식한 경영(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의 공식 명칭)’ 같은 접근 방식을 참고해 장기적 기업가치 향상을 꾀해야 한다. 또 단기적 수익 극대화에 집중하는 개인투자자의 요구를 보완하도록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관여에 나설 필요가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주주관여를 적극적으로 강화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적 사례로, 중점 관리 사안에 따라 기업과의 대화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있다.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국민연금은 37개 기업에 공식 서한을 발송하고, 159개 기업과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다.

2023년 지침 개정을 통해 기후변화 및 산업안전과 관련한 위험 요인을 주요 관리 대상으로 설정하고, 총 23개 기업과 대화를 시작한 것도 긍정적 변화다. 일본 공적연금(GPIF)은 지난해 ‘스튜어드십 활동 및 ESG 투자의 효과 측정’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GPIF보다 4년 늦게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한 만큼 3~4년 내 정량적 성과 분석을 공개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의 주주관여 강화는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중요한 흐름으로 평가된다. 단순한 의결권 행사를 넘어 적극적인 주주관여 활동을 확대하는 것은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국민연금이 지배구조 개혁을 위한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3년 말 기준 한국 주식시장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최대주주가 29.2%, 특수관계인이 10.5%를 보유해 내부주주 지분율은 약 40% 수준이다. 반면,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등 소액주주가 48.4%, 외국인이 5.9%, 기타가 2.6%로 외부주주 비율은 57%에 달한다. 자사주 비중은 3% 수준이다. 외부주주는 최대주주의 반대 개념으로, 소수주주(minority shareholders)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은 한국 소수주주 중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투자자로, 코스피 기업의 평균 지분율은 3.47%, 코스닥 기업에서는 2.14%를 기록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25년 3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주주총회 참석률이 60%일 때, 지배주주 지분율이 30%(특별 결의는 40%)를 넘으면 지배주주의 찬성만으로 안건을 가결할 수 있다”며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상장주식의 평균 지배주주 지분율이 43.6%에 달하기에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져도 주총에서 부결되는 사례가 적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지 않는 한, 주주총회에서 지배주주와의 표 대결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구조임은 분명하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평가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3월에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에게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오는 5월에는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공시 우수기업’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거버넌스 개혁을 위한 정책적 기반이 하나둘 마련되고 있지만, 결국 핵심은 실질적 이행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한때 글로벌 투자 흐름을 주도했지만, 일부 기업과 기관의 미흡한 실행으로 인해 그린워싱과 ESG 워싱 논란이 불거진 것도 현실이다. 한국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고 밸류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여주기식 정책을 넘어 실질적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신지윤 서스틴베스트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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