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행은 올해 1월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연 0.5%로 올리기 전 일본 정부에 이런 의견을 전했다. 일본은행 고위 인사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일본은행이 지난 1년간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건 엔저에 떠밀린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엔화 가치 방어가 기준금리 인상 목적 중 하나였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3월 19일 마이너스 금리에서 탈출하며 통화정책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이후 4개월 뒤 기준금리를 연 0.25%로 올렸고 올해 들어선 17년 만의 최고치인 연 0.5%까지 기준금리를 끌어올렸다. 그사이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지난해 3월 연 5.25~5.5%이던 금리를 최근 연 4.25~4.5%로 내렸다. 미·일 금리 차이는 1.5%포인트나 축소됐다.

이는 엔화 가치 상승 요인이다. 하지만 엔화 가치는 제자리다. 25일 도쿄 외환시장에선 달러당 엔화 환율은 150.6엔 안팎에서 움직였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돌아서기 직전인 지난해 3월 18일(달러당 149.1엔)에 비해 엔화 가치는 오히려 더 떨어졌다. 작년 9월엔 달러당 엔화 환율이 한때 139.5엔까지 하락했지만 결국 도돌이표가 됐다.
일본은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국채 등 일본 자산의 투자 매력이 높아져 일본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엔화 가치가 상승세를 탈 것이라고 봤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본 금융권에선 자국 내 풍부한 달러 수요가 엔화 가치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도입된 새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통한 해외 투자 열기다. 작년 일본 투자신탁사와 자산운용사의 해외 증권 투자는 11조5066억엔으로 1년 만에 2.5배가량 늘었다. 일본인이 자국 증시보다 해외 증시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떨어지는 점도 엔화 가치 상승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일본은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2월 3.0%)이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임금 인상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은 감소세다. 1월 실질임금은 전년 대비 1.8% 줄었다. 소비가 잘 늘지 않는 이유다. 그동안 일본 기업의 이익은 늘었지만 생산성 향상보다 엔저 효과에 기댄 측면이 컸고 이는 내수 부진으로 이어졌다. 일본 내에선 일본 경제가 여전히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결국 경제 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기준금리 인상만으로는 엔화 가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치다 신이치 일본은행 부총재는 지난 5일 한 강연에서 “더 높은 성장을 원한다면 생산성 향상 등 (경제) 실력 자체를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달러 약세 기조에서도 원화 가치가 맥을 못 추는 한국 경제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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