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안동을 거쳐 청송, 영양, 영덕 등 동쪽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했다. 천년고찰이자 국가보물인 의성 고운사는 화마에 휩쓸려 전소됐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인근까지 불길이 근접했다. 전국에 산불 위기경보가 내려졌고, 국가유산 재난 국가위기 경보 수준은 ‘심각 단계’로 격상됐다. 안동시와 청송·영덕·영양군은 25일 전 주민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도 의성에서 번진 산불이 한때 5㎞ 지점까지 위협해 위기를 맞았다. 소방당국은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에 소방차, 인력을 동원한 방어선을 구축해 가옥 등에 밤늦게까지 물을 뿌리는 등 화마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불길은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에도 번졌다.

경북 북부 곳곳에선 상승기류를 타고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현상과 불기둥에서 떨어진 불씨가 산과 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깨비불’로 불리는 ‘비화(飛火)’ 현상이 목격됐다. 화마가 급속히 확산한 주된 이유다.
소방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현장에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초속 20m를 넘는 강풍에 속수무책이었다. 소방당국은 의성과 안동에만 헬기 80여 대와 37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그럼에도 일부 현장에서는 인력과 장비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인명 피해도 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께 경북 청송군 청송읍의 한 도로 외곽에서 6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22일 경남 창녕 산불 진화에 투입된 창녕군 공무원과 진화대원 등 4명을 포함하면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총 5명으로 늘었다.
전날 70%까지 상승하던 진화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일대 산 정상 부근에 순간 최대 풍속 초속 35m에 이르는 강한 바람이 불어 산불의 기세가 되살아나고 있어서다. 의성 안평면에 있던 소방지휘본부도 의성읍으로 대피했다.
고온 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겹쳐 불길 잡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안동과 의성엔 22일 발효된 건조주의보가 이어지고 있고 26일 새벽부터는 경북 동해안과 북동 산지에 순간풍속 시속 70㎞ 이상 강풍이 불 것으로 예보됐다.
27일에서야 전국에 비 소식이 있지만 경북 지역 강수량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경북 서부내륙에 5~10㎜, 대구·경북(서부내륙 제외)에 5㎜ 미만의 비가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산불의 영향을 받은 의성, 안동 지역에 짧은 시간 동안 적은 양의 비만 내릴 것으로 예상돼 진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권용훈/임호범/김다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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