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다 잃고 오고 갈 데가 없습니다.” (이재민 A씨)
27일 경북 의성 점곡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 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들어서자 텐트 안에 있던 이재민 7명은 체육관 한쪽에 펼쳐진 깔개에 주저앉은 뒤 입을 뗐다.
대체로 70대 이상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은 “집도 없고 재산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이재민 B씨)며 통곡했다. 이 대표는 “큰돈 아니니까 최대한 예산 확보해서 지원 잘하겠다”면서 안심시켰다. 이재민들의 눈을 맞추고 손을 일일이 잡으며 위로했다.
선거법 위반 관련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사법리스크를 일부 해소한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민생을 챙기는 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그는 전날 선고 직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곧바로 경북 안동으로 향했다. 1박 2일 일정으로 안동·청송·영양·의성 등 산불 피해 현장을 둘러봤다.
이 대표는 이날 첫 공식 일정으로 천년사찰 고운사를 찾았다. 주지 스님(등운스님) 함께 무너진 기왓장 잔해 사이사이를 누비면서 급박했던 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등운스님은 "5분 사이에 불이 번졌고 열기가 어마어마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산불은 안동 봉정사와 영주 부석사 등 인근 문화유산도 위협하고 있다. 이 대표는 고운사를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고운사를 포함해서 이미 피해를 본 지역이나 시설들에 대해서는 예산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국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런 위험한 시기에 쓰자고 세금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찾은 의성 점곡체육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대표는 "나라에서 일정한 상당 기간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다 책임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중앙정부에는 군 지원 인력을 더 확보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는 "군 인력 지원 500명 정도 되고 있다는데 매우 부족할 거 같다"며 "정부 차원에서 가용한 군 인력을 화재진압에 투입해주길 요청할 생각"이라고 했다.
관건은 예산 확보다. 여야는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데 이견은 없지만 지난해 민주당이 삭감한 예비비를 두고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민주당이 삭감한 예비비 약 2조원을 되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해·재난에 쓸 수 있는 목적예비비는 2조6000억원에서 1조6000억원으로 삭감됐고, 일반예비비는 2조2000억원에서 8000억원으로 줄었다.
민주당은 추가경정예산으로 예비비를 복원할 필요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경북 청송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난 지원 관련 예비비는 충분하다”며 “(국민의힘이)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 정쟁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이날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대통령 지역 방문 현장'을 방불케 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어느 곳에선 지탄받았고 또 어느 곳에선 환영받았다. 청송 진보문화체육센터 앞에서 약식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한 시민은 이 대표를 향해 고성을 질렀다. 그는 이 대표를 향해 "사진 촬영 다 하셨으면 지금 내 창고 불타고 있는데, 불 좀 끄러 가자"고 했다.
영양 문화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 일정 중에는 이 대표를 폭행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센터 건물 밖에 나와 자원봉사자들에게 인사하던 도중 한 남성이 이 대표를 향해 겉옷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부상 등의 피해는 없었다.
다만 이곳에선 "이 대표가 와서 든든하다" "박수 한번 치자"는 등 그를 반기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 대표는 "영양이 어머니의 고향"이라고 했다. 그는 1시간가량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하기 전에는 지역 주민들과 셀카를 찍었다.
이 대표는 28일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을 찾는다. 중도층 표심을 겨냥해 안보를 챙기려는 일환이다. 이 대표가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민주당 최고위원들도 대전으로 결집해 대전시당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안동·청송·영양=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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