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증거를 가지고 재판을 했는데 1심과 2심이 완벽하게 다른 판단이 나오니 국민들은 심각한 사법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1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해서 2심에서 바로잡았다고 한다 해도 그렇다면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문제 아닌가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항소심서 허위사실공표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받자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중 일부다. 앞서 이 대표 아내 김혜경 씨의 비서였던 배 모 씨는 이 대표 당선을 위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확정받는 등 중형이 선고된 사례가 상당하다. 법조계에선 선거법 재판에 판사의 재량이 작용하는 범위가 너무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이던 시절, 아내 김 씨의 수행 비서 역할을 한 배 씨는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표 가족을 위해 사적 용무를 처리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문을 냈다.
검찰은 허위 사실 공표 혐의 등으로 기소했고, 배 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허경영 씨는 지난 대선 당시인 2022년 '삼성 이병철 회장님을 만나서 그분의 양아들로 지내게 됐다'고 말했다가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박경귀 전 아산시장은 지난 2022년 경쟁 후보의 부동산 허위 매각 의혹을 제기해 허위사실공표혐의로 벌금 1500만 원이 확정돼 시장직을 잃었다.
이처럼 허위 사실 공표로 중형이 선고된 사례와 달리 이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자 법조계에선 '재판부 로또'란 지적도 나왔다.
박찬록 변호사는 TV조선에 "처음에 이건 무죄가 아닌가 그렇게 심증을 가지면 무죄로 가는 경우가 많고 또 유죄가 아니냐는 심증을 가지면 유죄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 범위가 상당히 좀 넓다"고 지적했다.
판사의 재량권이 넓다 보니 권력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는 점도 사법부의 정치화라는 우려를 낳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26일 이 대표의 뒤집힌 판결에 "2심 결과는 존중받아야 한다"면서도 "정치의 큰 흐름이 사법부의 판단에 흔들리는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치인이 연루된 형사재판에서 하급심과 상급심 판단이 엇갈리는 일이 반복되는 현실 역시 사법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며,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이번 판결이 잘못된 1심 판결을 바로 잡고 정의를 세웠다는 주장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나왔지만 이 또한 사법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면에서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2023년) 항소심 판결 결과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2심에서 무죄가 나올 확률은 2% 미만이다.
최근 3년간(2021~2023년) 형사 항소심 판결 결과를 분석한 결과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건(3만5099명)이 2심에서 무죄(585명)로 뒤집힐 확률은 약 1.7%에 불과했다.
이 대표의 판결이 그만큼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나왔다는 셈이다.
박성배 변호사는 YTN뉴스에서 "나름대로 긴 시간을 두고 심리를 진행해가면서 비교적 동등한 자격을 갖춘 3명의 판사가 협의를 거쳐 나온 판결인 만큼 1인의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거나 특별한 정치적 지향에 따라서 판결이 이루어졌다는 비판은 어려울 것"이라면서 "다만 아직까지는 대법원에서도 항소심이 1심 판결의 자료를 그대로 두고도 사실상 그 결론을 뒤집은 것처럼 대법원도 역시 항소심 판결을 두고 다시 결론을 뒤집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직까지는 그대로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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