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품 도시다. 미술사가들이나 관광 가이드들은 피렌체의 아름다운 자태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 천재 예술가들의 업적을 여러 말로 칭송한다. 반면 그들에게 돈을 대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가령 피렌체의 대표 건물 ‘두오모’(피렌체 대성당)의 아름다운 돔을 설계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 이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건축주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지 않는다. 피렌체 대성당 건축은 양모사업자 길드인 ‘아르테 델라 라나’가 책임진 사업이었다. 대성당 옆에 있는 팔각형 산조반니 세례당은 이 길드의 선배 격인 ‘아르테 디 칼리말라’가 돈을 내서 지었다.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는 주변 영토를 거느린 독립 국가의 수도였다. 천연자원이 많거나 토지가 비옥하지 않은 내륙 도시 피렌체를 강력한 공화국으로 발전시킨 것은 그 나라의 기업가들이다. 이들은 멀리 영국에서 양모를 수입해 와서 뻣뻣한 양털을 여러 단계 공정을 거쳐 부드럽고 우아한 옷감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제조한 고급 상품을 이탈리아 및 유럽 전역에 수출했다. 은행가 길드인 ‘아르테 델 캄비오’는 모직 제조업과 무역업을 금융서비스로 지원했다.
피렌체의 기업인 조직인 길드(아르테)들은 피렌체 공화국 정치도 책임졌다. 자노 델라 벨라가 1293년에 입안한 ‘정의체제’(Ordinances of Justice)는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의 정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 제도로 상인과 장인의 정치적 권리를 강화했다. 그 누구건 공직에 참여하려면 길드에 소속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길드 대표들은 공화국의 행정부와 입법부를 구성했다. 경제 발전에 매진한 피렌체 공화국은 사회의 에너지를 한데 모았다. 길드들은 교회를 건축하고 병원 등 복지시설을 세웠다. 귀족 가문 출신과 평민이 같은 길드에서 활동했다. 다양한 업종에서 재능 있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고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이들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게 만드는 뛰어난 작품들을 후손들에게 물려줬다.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은 국가 권력과 전문 관료들이 대기업을 적극 지원해 일궈낸 성과다. 피렌체처럼 천연자원이 부족한 한국은 인재 발굴과 양성을 통해 제조업과 무역 강국으로 도약했다.
두 나라의 유사성은 딱 거기까지다. 한국에는 경제 발전의 혜택은 알뜰히 누리면서도 그것을 만들어낸 기업가들의 공적은 인정하지 않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정치, 사법, 언론, 학술, 교육, 문화 등 사회의 여러 부문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 학계와 언론, 교육, 문화계에서는 ‘정경유착’, ‘개발독재’ 등의 말을 지어냈고 ‘재벌 해체’와 ‘경제민주화’를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다. 정치인들은 대기업에 거액의 법인세를 부과하고 경영자들을 감시와 규제로 묶는 데 진력한다.
기업가들이 국회의원이나 장관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반면, 기업의 피고용자인 근로자들의 조직은 나라의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반기업적 여건 속에서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 문턱에 한 발을 얹고 있는 것은 그 자체가 한강의 기적이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