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카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1957년 11월 3일 소련이 발사한 스푸트니크 2호에는 고된 훈련을 거쳐 선발한 개 라이카가 실려 있었다. 국내 창작 뮤지컬 ‘라이카’는 인류 최초 우주 탐사견 라이카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뮤지컬계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한이박(한정석 극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 트리오’가 뭉쳐 개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어린왕자는 과거 생텍쥐페리를 보러 지구로 갔다가 독일 공군 리페르트가 생텍쥐페리가 탄 비행기를 격추하는 장면을 봤다. 사람을 경계하기 시작한 그는 지독하게 이어지는 전쟁, 그 안에서 커지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을 증오했고 인간에게 버려질 운명인 라이카를 기다렸다.
라이카가 타고 온 우주선에는 귀환 장치가 없었다. 이런 사실을 숨겨오던 어린왕자는 마침내 라이카에게 진실을 밝혔고 ‘지구 종말’ 목표를 함께 이루자고 제안했다. 라이카는 인간의 명령대로 기다렸기에 선택받고 신뢰를 얻었지만, 반대로 기다렸기에 우주에 버려진 자신의 처지에 혼란을 느꼈다. 분노에 휩싸여 어린왕자와 뜻을 같이하기로 했다. 하지만 무수히 희생될 또 다른 생명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내 마음을 접었다.
‘라이카’는 비인간의 존재들에게서 인간다움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이다. 라이카에 대한 걱정으로 당장은 잔인한 현실을 알리지 말자며 어린왕자를 설득하는 장미, 인간에게 버림받았음에도 인간과 쌓은 정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라이카, 그런 라이카의 마음을 이해하는 어린왕자까지. 지구 종말 복수를 포기하며 인간이 미처 품지 않은 영역의 생명까지 끌어안은 라이카의 선택에 일순간 객석은 숙연해진다. 과연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묵직한 생각을 안기는 ‘라이카’다.
연출적으로는 무대를 간소화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무대를 꽉 채워 상상력을 충족하는 방식이 쓰였다. 둥그런 원형 세트에 무대 안쪽 깊숙한 공간까지 영상을 붙여 지구를 떠나 실제 우주 공간에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무대 좌우에는 행성 모형까지 꼼꼼하게 표현됐다.
다만 어린왕자가 인간을 극심하게 증오하게 된 계기, 지구 종말 계획에 라이카를 끌어들이려고 한 이유, 오랜 시간 공들여온 계획을 일순간 포기하는 심적 변화 등 전개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극의 흐름을 따라가며 주제에 몰입하던 이들이라면 뚝 끊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라이카’는 오는 5월 18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계속 공연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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