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09일 12:1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1월 27일, 미국 증시는 충격의 하루를 보냈습니다. 기술 기업들의 시가 총액이 1조 달러나 증발했습니다. 엔비디아는 17퍼센트가 하락한 6,000억 달러로 미국 주식 시장 역사상 하루에 가장 큰 폭락을 기록했습니다. 인공지능(AI) 생태계의 다른 기업들도 비슷했습니다. 공황의 원인은 딥시크라는 무명의 중국 스타트업이 출시한 대규모언어모델(LLM)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중국 주식시장은 올해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중국 기술 기업을 담은 홍콩 항셍 기술 지수는 1월 중순 이후 40퍼센트 이상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미국 기술기업들은 평온을 되찾았습니다만 활기는 예전같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의문의 꼬리는 이어집니다. 미국 빅테크들은 거품이 끼었던 것일까? 딥시크 모멘트 이후 어떤 기업들이 단기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승자가 될까? 과연 중국 AI 세상이 오는 것일까? 한국은 AI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일까? 이런 가운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델 제작, 클라우드 서비스 등 AI 생태계와 밀접한 기업들의 운명이 궁금해집니다.
먼저 딥시크 학살로 충격이 가장 컸던 분야는 하드웨어입니다. 최고 사양의 칩을 생산하는 엔비디아는 칩 수요가 줄어들면서 압박을 받을 것입니다. AMD와 같은 경쟁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만의 TSMC는 13퍼센트 하락했습니다. 충격은 칩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데이터센터 서버 랙을 만드는 HPE와 델도 휘청거렸습니다. 네트워킹 장비 업체 아리스타, 칩 과열을 막는 냉각장비 업체 버티브 등도 비켜가지 못했습니다. 에너지 기업들도 피바다에 휩싸였습니다. 전기 장비 제조업체 지멘스에너지와 원자력에 사용되는 우라늄 업체 카메코도 흔들렸습니다.
반면 소프트웨어 분야는 웃었습니다. 세일즈포스와 SAP과 같이 애플리케이션 회사들은 저렴한 AI 모델을 기반으로 비용이 감소하며 수혜를 볼 것입니다. 당연히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주가도 급등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독일의 SAP로, 지난 3월 말 유럽 시총 1위로 올라섰습니다. 덕분에 애플도 웃었습니다. 다른 빅테크와 달리 AI 인프라 투자에 비켜서 있었는데, 저렴한 AI 모델 등장으로 여러 선택지 중 최상의 것을 선택하며 소비자용 앱 물결 확산과 제2의 아이폰 성장이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모델 제작사들은 어떨까요? 오픈AI와 엔트로픽과 같은 기업들은 비상장사로 자본시장의 충격에 노출은 덜 되었습니다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델 제작사인 딥시크가 기존 방식을 전복시켰기 때문입니다. 기존 방식의 기업들은 엄청난 자금을 소진해 왔습니다. 그런데 딥시크가 더 적은 돈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가성비를 보여주면서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딥시크를 두고 오픈AI의 샘 알트만은 이렇게 트윗했습니다. "작동된다는 것을 알면서 복사하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다. 작동할지 모를 때 새롭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기란 또다른 문제."라고 말입니다. 짜증과 긴장감이 묻어납니다.
클라우드 서비스는 좀 다릅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이라는 소위 빅쓰리(3)는 AI 공급망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과 같은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은 저렴한 모델의 보편화로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빅쓰리는 모델을 직접 제작하거나 오픈AI와 엔트로픽 지분 보유를 통해 간접적으로 모델 제작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AI 인프라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주주들은 천문학적 투자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할 것입니다. 이들 기업은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인다며 칩도 직접 설계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공룡들은 상대적으로 평온해 보였습니다.
이렇듯 AI 생태계의 리더들은 희비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딥시크가 보여준 것처럼 컴퓨팅 파워 수요가 줄어들면 칩 등 하드웨어와 기존의 모델 제작 분야는 울상이지만 소프트웨어 분야는 장밋빛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딥시크가 일으킨 파문의 본질입니다. 2010년 혹한기에서 탈출했던 AI는 확장을 거듭하다가 2022년 말 챗GPT 등장으로 또다시 신기원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챗GPT의 근간인 LLM의 진화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바로 ‘추론 모델(reasoning model)’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오픈AI 등 모델 제작사들은 과학과 수학 분야의 난해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문제를 여러 단계로 분해하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심층적인 사고를 하는 추론 모델 강화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는 심리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네만의 ‘시스템 2(System 2)’ 사고의 디지털 버전으로, 빠르고 본능적인 ‘시스템 1(System 1)’보다 느리고, 신중하며, 분석적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수도를 물으면 데이터와 경험에 근거하여 직관적으로 서울로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더 복잡한 질문에는 더 구조화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다섯 번째 인구가 많은 도시를 물으면, 시스템 1의 사고로는 힘들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픈AI가 추론 모델을 강화시킨 o3를 내놓자 업계는 흥분했습니다. 초인적 지능을 향한 큰 발걸음으로, AI가 더 많은 ‘생각’을 하며 더 뛰어난 결과를 내놓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더 많은 컴퓨팅 파워와 더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합니다. 즉 AI 확장이 ‘훈련’에서 ‘추론’ 중심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딥시크 모델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추론 모델은 모델 구축에 들어가는 고정비가 줄어드는 반면 모델에 질의하는 한계비용은 늘어납니다. 웹 검색과 소셜 네트워킹에서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업을 복제하려면 막대한 고정비 투자와 막대한 손실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만 검색 비용은 미미합니다. 그런데 AI 모델 질의 비용이 줄어들면, 다양한 모델이 급증하고 수요도 급증합니다. 높은 고정비와 낮은 한계 비용으로 승자독식의 네트워크 효과를 누렸던 기존 방식은 물론이고, 지금 클라우드 빅쓰리가 엄청난 자금력을 앞세워 구축 중인 철옹성은 무너지게 됩니다. 말하자면 AI 경제의 패러다임이 전환됩니다.
그동안 극강의 미국 AI 기업들은 접근 방식이 달랐습니다. 오픈AI의 샘 알트먼은 미국이 AI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돈과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클라우드 빅쓰리와 메타는 지금도 엄청난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의 투자 규모는 알리바바, 바이두, 바이트댄스,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의 여섯 배나 되고, 미국 데이터 센터 수는 중국의 열 배나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압도하고 "국가적 성공의 스릴 넘치는 새로운 시대"를 실현하겠다며 역사상 가장 큰 스타게이트 프로젝트(Stargate Project)’를 출범시켰습니다.

반면, 중국 AI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우선 미국의 제재 때문이었습니다. 2022년 미국은 중국에 대해 첨단 칩과 장비 수출을 금지하고 중국에 도움이 될만한 국가의 기업들마저 위협했습니다. 중국 내부의 제약도 작용했습니다. 공산당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정보와 콘텐츠를 내놓는 모델을 우려했습니다. 빅테크들은 자체 모델을 구축했지만 공개는 주저했습니다. 결국 중국 당국은 건전한 콘텐츠와 ‘사회주의적 가치’ 고수를 전제로 AI 육성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미국에 압도당할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이후 알리바바, 텐센트 등 거대 기업들이 자체 LLM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딥시크가 등장하였습니다. 딥시크는 알리바바가 LLM 모델을 출시했을 때조차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AI를 기반으로 주식 거래 능력을 강화시킨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가 모태입니다. 컴퓨팅 파워는 하이-플라이어 것을 활용했습니다. 수십억 개의 매개변수 도출에 소요되는 칩 시간과 비용을 줄였습니다. 칩은 최첨단 급도 아니었습니다. 창업자 량원펑은 가난한 마을의 교사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에서 대학 수준의 수학을 마스터하고, 저장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정도의 스펙이 전부입니다. 연구진은 해외 유학 경험이 전무한 20~30대 청년들이 주축입니다. 이런 딥시크가 작년 5월에 초저가 챗봇을 출시하면서 도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중국 거대 기술 기업들의 가격 전쟁이 촉발되었습니다.
딥시크의 파장은 지금도 확산 중입니다. 자동차 업계와 에너지 기업과 은행과 식음료 행상에 이르기까지 딥시크 기술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텐센트는 자체 모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딥시크 모델을 채택하였습니다. 지방 정부는 민원용 앱에 딥시크 모델을 통합하고 있습니다. 딥시크가 항저우의 부동산 시장을 살릴 것이라는 기대마저 나옵니다. 중국 정부는 AI 전용 벤처캐피털 펀드 조성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거대 기술 기업들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습니다. 알리바바는 데이터 센터 구축에 엄청난 투자를 약속하며 제2의 도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AI는 미국의 독무대나 다름없었습니다. 2016년 말 미국 백악관은 ‘인공지능과 자동화: 경제적 영향 및 대응 전략(Artificial Intelligence, Automation, and the Economy)’을 발표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며 트럼프 행정부에 남긴 보고서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AI 개발 가속화로 인간 노동의 일부가 ‘자동화’되며 개인과 경제, 사회 전체에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며 AI의 긍정적 효과는 배가하고 실업과 불평등 등 부정적 효과를 완화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제시했습니다.
백악관은 AI 발달에 3가지 상호강화적 요소를 들었습니다. 전자상거래, 기업, 소셜미디어, 과학, 정부 등 다양한 소스를 통한 ‘빅 데이터(big data)’ 형성, 이러한 빅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기계학습 접근법과 ‘알고리즘(algorithm)’의 대폭적인 향상, 더욱 강력해진 ‘컴퓨팅 파워(computing power)’로 인한 기계학습과 알고리즘 향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AI가 빅 데이터, 알고리즘, 컴퓨팅 파워로 더욱 강력해진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0여년 전과 지금과는 좀 다른 게 있습니다. 빅 데이터 접근성과 컴퓨팅 파워의 제약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다릅니다. 당시 보고서에는 AI 기술에 생성형 지능과 창의성 부문에서 제약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성형 지능에 대한 제약은 챗GPT 등장으로 깨졌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추론 모델을 보면 창의성까지 제약이 깨질수도 있습니다.
백악관 보고서가 나온 이후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딥시크 출현 이후 AI 기술에 대한 미국의 초격차가 흔들리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미국 중심의 철옹성 같았던 AI 생태계 구조가 변했다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AI 초격차를 위한 엄청난 돈을 집어삼키는 빅데이터와 컴퓨팅 파워의 전제는 무너졌고, 알고리즘은 여전히 진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알고리즘 진화를 통해 작고 유연하며 단단한 AI 플레이어들이 출현하며 또다른 생태계 변화가 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향후 미국과 중국의 AI 패권은 기술 그 자체보다는 활용에 좌우될 수도 있습니다. 즉, 발명(invention)보다 확산(diffusion)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기술 발명에서 뒤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권위적인 정치 시스템, 위험 회피, 둔화된 시장 인센티브 때문에 확산이 더디었습니다. 미국은 정반대입니다. 역사적으로 전기와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기술 발명은 물론이고 확산에 더욱 탁월했습니다. 그런데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지방 정부에 이르기까지 의료 기록, 민원 해결, 실종자 찾기까지 AI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딥시크 수요의 절반가량이 공공 부문에서 나옵니다. 소비자용 챗봇은 대부분 무료입니다. 데이터 보호와 저작권 침해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에 활용 제약도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제조업입니다. 세계 제조업의 30퍼센트를 차지하는 제조업이 AI를 통하여 생산성이 급속도로 향상될 것입니다. 전기차 리더 BYD는 새로운 모델에 추가 비용 부담 없이 자율주행 기능을 장착했습니다. 중국이 재정적 화력 면에서는 미국에 미치지 못하지만, 가성비 높은 AI를 통해 확산은 압도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AI 미래는 아직 불투명합니다. 교육계에서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여 학생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맞춤형 학습 기회를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에이스(AICE) 어소시에이트라는 공인 민간 자격을 부여하여 공공 부문과 민간 기업에서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는 제도도 도입되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인재가 모두 의대로 쏠리고 있다며 우려합니다. 그런데 AI 디지털 교과서든 에이스든 의대 광풍이든 청년들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AI를 통해 얻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추론 모델과 딥시크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생각의 힘과 문제 제기가 존중되는 환경이라면 화려한 스펙 없이도 AI 진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것, 익숙한 것을 새로운 것과 융합하여 현실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진화입니다. 이 때문에 어쩌면 소프트웨어와 모델 제작 같은 분야에서 길이 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Complete Unknown)’에서 미국 중서부 변방 출신의 스무살 청년 밥 딜런은 팝의 본거지 뉴욕에서 뮤지션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사회 문제를 은유적인 노랫말로 담아내면서 투병 중인 포크계의 우상을 이을 스타로 올라섭니다. 그런데 그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도발을 합니다. 당시 사탄 음악으로 여기던 락을 포크에 접목시킨 포크락을 시작하며 새로운 지평을 엽니다. 대중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문제를 찾아 제기하면 AI의 주인이 되겠지만, 문제에 대한 해결에만 매달리면 AI의 노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i>(본 글은 The Economist의 ‘Why Chinese AI has stunned the world(2025년 1월)’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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