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 경력 32년 설경구가 '하이퍼나이프'를 통해 처음 경험한 것들에 대해 말했다.
설경구는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하이퍼나이프' 인터뷰에서 "의학 드라마도 처음이고, 이렇게 이해하지 못할 감정의 묘한 연기를 한 것도 처음이었다"며 "그래서 좋았고, 이걸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웃었다.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다. 천재 의사 정세옥 역에는 박은빈이, 그와 애증 관계인 스승 최덕희 역에는 설경구가 캐스팅됐고, 지난 9일 총 8개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됐다.
설경구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킹메이커', '길복순', '보통의 가족' 등 다채로운 장르를 넘나들며 명불허전의 연기력으로 사랑받아 왔다. '하이퍼나이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이자 한때 가장 아끼던 제자 세옥을 잔인하게 내친 스승 '덕희 역을 맡아 열연했다.
설경구는 예상치 못한 삶의 변화로 6년 만에 자신이 버린 제자 세옥과 재회하며 펼쳐지는 복잡미묘한 관계 변화와 감정의 진폭을 세밀하게 그려내 극의 몰입감을 더했다는 평이다. 설경구의 의학드라마 출연은 1993년 연극 '심바새메'로 데뷔한 설경구의 연기 인생에서 처음이다. 설경구는 "의학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고 출연했다"며 "수술 장면도 그렇고, 의학 용어도 제가 외울 자신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이번 수술 장면도 열심히 교육받고 했지만, 제 손이 둔하게 생겼다"며 "신뢰가 떨어지는 손가락이라 대역을 부탁했다"고 전했다.
또한 덕희를 완성하기 위해 체중까지 감량했다. 최고 실력을 갖춘 신경외과 의사가 자신에게 악성종양이 생기면서 나날이 병세가 심해지는 인물의 고통과 아픔을 실감 나게 표현하기 위해 10kg 이상을 감량했을 뿐만 아니라 절식까지 하며 인물을 빚어냈다.
설경구는 "마지막에 덕희와 세옥이 만나는 장면을 위해 체중을 감량했다"며 "더 준비할 수 있었다면 더 뺄 수 있었을 텐데, 약이 올라 더 바짝 단식했다"고 말했다.
설경구의 열연과 함께 '하이퍼나이프'에 대한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 OTT 플랫폼 검색 엔진 서비스를 담당하는 키노라이츠 기준, 별점은 3.3(최고점 5.0 기준), 세계 최대 규모 콘텐츠 평점 사이트 IMDb 평점은 8.2(최고점 10점 기준)를 기록했다. 글로벌 OTT 플랫폼 시청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서도 한국과 대만에서 선두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포함해 아시아 주요 지역에서 톱5에 진입했다.
설경구는 "한국 작품은 다 1위 하는 거 아닌가"라고 너스레를 떨며 겸손함을 보이면서 "색깔 있는 OTT (작품이)였던 거 같아서, 마니아층이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다음은 설경구와 일문일답.

▲ 어떻게 작품을 봤을까.
= 종영하고 배우들 몇분이랑 감독님 작가님께 연락을 했는데, 아쉬움도 많지만 참 감사하다고 했다. 걱정을 많이 했다. 이 작품뿐 아니라 제가 했던 작품은 늘 걱정이 많은데, 묘한 감정들을 받아들여 주셔서 다행이고 감사한 거 같다.
▲ 데뷔 32년 만에 첫 의사 역할이었다.
= 이게 본격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더 다행이었던 거 같다. 저는 의학 드라마면 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술 장면도 그렇고, 의학 용어도 제가 외울 자신이 없었다. 이번 수술 장면도 열심히 교육받고 했지만, 제 손이 좀 둔하게 생겼다.(웃음) 여기서 오는 섬세함이 떨어질 거 같더라. 신뢰가 떨어지는 손가락이라 부탁했다. 제 손 클로즈업은 자문 교수님께서 해달라고. 박은빈씨는 본인이 직접 했지만, 저는 자신이 없었다.
▲ 세옥과 덕희의 관계는 처음엔 애증이었는데, '피폐멜로'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 제가 반응을 찾아보는 사람은 아니다. 어느날 은빈 씨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피폐멜로'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하더라. 표현이 재밌었다. 그런데 맞는 거 같다. 뭐든 다 주고 싶은 게 사랑 아닌가. 다 주고 싶은 게 덕희의 마음이고, 그런 그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 하는 게 세옥의 마음인 거 같다. 제가 '한심한 새끼'라고 계속 말했는데, 은빈 씨도 넣더라. '한심한 스승'이라고.
▲ 연기 천재가 본 연기 천재 후배 박은빈은 어떻던가.
= 난 천재가 아니다. 그리고 제가 선배라고 '저 후배는 어떻다'고 말하는 것도 아닌 거 같고. 본인은 똘똘하고 똑똑하다고 말하는 건 싫어하더라. 그런데 정말 열심히 한다. 선한 역할만 하다가 이런 연기를 해서 욕심이 더 생겼을 텐데, 그걸 잘 해낸 거 같다. 촬영하면서 말을 제일 많이 했다. 자꾸 말을 시킨다. 그런데 그게 정말 고마웠다. '귀찮으면 하지 말라 말하라' 하는 데 저는 다 좋았다. '식사를 했냐'부터해서. 그래서 편해진 것도 있었다.
▲ 박은빈은 아역부터 시작해서 또래들과 연기를 해도 선배 취급을 받는데, 설경구와 연기해서 의지했다고 하더라.
= 제가 의지했다. 제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배우가 아니다. 젊은 배우랑 해도 콩 한 쪽 갖고 싸우는 사람이다. 선배로서 뭘 하는 게 낯간지럽고 이상하다. 그렇게 바라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도 박은빈이었다. 까놓고 말해 작가님도 거의 신인이고, 감독님도 대표작이 '하이퍼나이프'가 됐다. 그런데 박은빈 씨에게 책이 갔다고 해서 봤는데 재밌더라. 그러더니 갑자기 김종도 나무엑터스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하이퍼나이프' 어떻게 봤냐고. 김종도 대표는 제 27년지기 친구다. 그땐 제가 '네가 그 책을 왜 봐'이랬다. 김종도 대표가 '내가 (박은빈 회사) 대표다' 이러더라. 그러면서 박은빈 씨가 할 수 있다는 얘길 듣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 클로즈업이 많은 작품이었다. 표정 연기 등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 제 연기보다 세옥의 얼굴을 볼 때 그런 감정이 더 올라왔다. 젊은 애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내레이션이 어우러져 그 아이의 인생이 슬프더라. 이 아이는 이렇게 살았구나. 덕희도 이렇게 살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그 와중에 누군가 계속 누가 죽는데, 이걸 설득하는 것도 힘들었을 거 같다.
= 4회까진 계속 죽고, 5회엔 누가 죽냐고 하더라. 그러고 죽지 않고 계속 갔다.(웃음) 배우들에겐 숙제였다. 애들이 살인하는 것만 나와선 안 된다 싶었다.
▲ 10kg 감량도 화제가 됐다.
= 제가 본 최덕희 최후는 죽음이었다. 저는 영화만 생각해서 과거를 먼저 찍고, 순서대로 안 가더라도 크게 보면 그렇게 할 줄 알았는데, 단칼에 거절당했다. 죽이고 싶었다.(웃음) 이해는 됐는데, 약이 올랐다. 그래서 '일단 빼자' 해서 마지막 둘이 만나는 장면에 공들이고 싶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그래서 3일 단식했다. 원래는 쉬면서 하는데 일하면서 하니까 힘들더라. 스케줄만 더 맞춰지면 더 뺄 수 있을 텐데, 못하니까 약이 올랐다. 이전부터 뺐지만, 막판에 그렇게 더 열심히 그렇게 했다.
▲ 결말에 덕희의 생존 여부는 명확하게 나오진 않는다.
= 전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덕희가 세옥에게 마지막 수업으로 죽음을 통해 뇌까지 주는 게 되는 거다. 그런데 살아야 한다고 해서. 마지막 걸어가는 것도 제가 안 찍었다. 대역이 찍은 거다. 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 덕희의 감정들에 이해했을까.
= 당연히 안된다. 보편적인 감정은 아니다. 세옥도 마찬가지고. '하이퍼'라는 것에 맞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과잉된 비정상적인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이런 감정, 이런 인물도 있구나' 생각하는 거지, 이해는 안 된다. 그런데도 설득하는 게 배우의 몫이니까. 보는 사람이 '말도 안 돼' 이러면 망하는 거다. 보는 사람이 따라와 준다면 성공한 거라 생각한다.
▲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로 설득해 공개되자마자 1위에 올랐다.
= 한국 작품은 다 1위 하는 거 아닌가.(웃음) 색깔 있는 OTT였던 거 같아서. 마니아층이 있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감사하다 이런 얘길 한 거 같다.
▲ 극중 세옥이처럼 "선배님을 보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뭐든 알려주세요"라고 하는 후배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박병은 배우가 대표적인데.
= 그럴 놈도 없고. '배우 못되겠다' 할 거 같다.(웃음) 박병은이가 오디션만 보면 '박하사탕' 연기를 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걸 내가 시켰나. 연기는 개인이 가진 독창성이지 선배라고 해서 함부로 얘기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연기하면서 선후배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고, 특히 가르키는 건 아니라고 본다. 병은 씨는 제가 '나불이'라고 부르는데, '나불나불' 말도 많고, 굉장히 똑똑하다. 센스도 있다. 그리고 어릴 때 보면 아이돌 같은 얼굴인데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고생을 많이 했다.
▲ '하이퍼나이프' 캐릭터들은 화가 나면 상대방을 죽이거나, 괴롭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설경구는 어떻게 화를 다스릴까.
= 조금씩 바뀌는 거 같다. 생물학적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 같은데, 예전엔 바로 뱉어버렸는데 요즘은 좀 더 유연해진 거 같다. 전 일을 거칠었던 시기에 시작했다. 욕설이 난무했던 상황에서. 욕을 입에 달고 다니는 감독님들이 있었다. 그런 데 요즘은 그러면 큰일 나지 않나. '야만의 시대' 그런 시대도 있었다.
▲ 과거엔 소시민을 대표하는 배우였는데, 이제 대통령과 국회의원, 의사까지 사회 지도층을 주로 연기하고 있다.
= 이제 그만해야겠다. 물릴 때가 됐으면 바꿔야 한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건 지루하다는 거니까. 그런데 책이 먼저 와야지.
▲ 다작의 아이콘이다. 쉼 없이 작품 활동하고 있는데, 목표 의식이 있는 걸까.
= 목표를 두고 살아가는 인물은 아니다.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려고 한다. 현장에 있어야 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이 가장 재밌다. 따로 취미도 없고. 현장에선 알게 모르게 심리적으로 치고 받는 게 있다. 여기 있는 저 스태프도 속으로 제 욕을 안 했겠나. 그래도 그런 것들이 재밌다. 살아있는 거 같아서. 정확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거니까, 그 자체가 재밌다. 그래서 촬영이 다 끝나고 나면 할 게 없고, 목적이 없어서 더 힘들다.
▲ 그런 설경구에게 '하이퍼나이프'는 어떤 작품일까.
= 시청자들이 열심히 분석하더라. 저희가 절대 하지 않았던 분석까지도. 저는 섬세하게 분석하고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송하고 감사하다. 에피소드를 매주 2개씩 보다가 1편부터 다시 정주행하신다는 것도. 다시 그렇게 돌려보는 드라마라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독특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못 한 건 처음이었다. '묘하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걸 받아주셔서 감사하고, 그렇게 묘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