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년을 늘리지 않은 채 임금을 삭감하는 구조로 설계된 임금피크제도 유효하다는 법원 판결이 또 나왔다. 무효로 봤던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삭감률이 과도하지 않고 근무시간 단축 등 보상 조치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해당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다시 기업 승소 사례가 나오면서 근로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면 정년유지형이라도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쪽으로 법원의 판단이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사는 2017년 노사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정년은 기존대로 만 60세로 유지하고 임금피크제 적용시기는 정년을 3년 앞둔 만 57세로 정했다. 임금 삭감률은 △1년차 10% △2년차 15% △3년차 20%로 설계됐다. 2022년엔 근무시간 단축 및 저축 제도와 전직 지원 프로그램도 신설됐다.
B씨는 “불합리한 연령 차별”이라면서 퇴직 직전인 2022년 12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법정에서 회사 측이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바꾸는데도 동의를 받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고, 2022년 10월 말부터는 출퇴근을 강제로 금지당하고 업무에서 배제당했다고도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임금 삭감에 대한 일종의 보상 조치가 이뤄진 2022년을 제외한 2020~2021년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봤다. 그러면서 이 기간 삭감된 약 1500만원을 B씨가 회사로부터 돌려받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2심 판단은 달랐다. 정년을 늘리지 않았더라도 해당 임금피크제의 도입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사는 원고의 정년이 1년 남은 2021년 별도로 정원 1명을 설정해 신규 채용을 하는 등 기존 근로자 정년 보장과 신규 채용이란 (정부의) 임금피크제 권고 취지를 그대로 따랐다”면서 “삭감률 또한 다른 공공기관보다 높지 않고 원고의 삶의 질을 현저하게 악화시킬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불이익이 과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근로자들로부터 동의를 받는 절차를 두고도 “2016년 11월 설명회를 열어 질의응답을 받고 근로자들끼리 충분히 의견 교환이 가능한 기간을 준 다음 투표를 통해 절반이 넘는 찬성 의견을 도출해냈다”면서 적법함음을 인정했다. 퇴직 3개월 전부터 업무에서 배제됐다는 B씨 주장에 대해선 “근무 단축 및 저축제도를 아예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퇴직일 기준으로 근무시간 단축이 적용됐다”면서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려 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 회사 임금피크제는 2급 이상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정년을 기존대로 만 61세로 유지하면서 임금은 최대 30%까지 줄어들도록 설계됐다. 당시 항소심을 맡았던 서울고법은 “다른 공공기관과 비교해도 감액기간과 지급률이 (근로자에게) 이례적으로 불이익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임금피크제 대상자의 경력과 자격 등을 고려해 직무를 부여하고 전문위원 제도도 도입하는 등 (임금 삭감에 따른) 불이익을 상쇄하는 조치도 했다”고 판단했다. A사 임금피크제와 거의 똑같은 판단 잣대가 적용됐다.
대형로펌 노동 전문변호사는 “근로시간 축소나 전직 지원 교육 등 보상조치가 있었다면 삭감률 10~30% 수준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라며 “관련 취업규칙을 절차에 맞춰 변경하고 근로자가 과도하게 불이익을 보지 않았다면 기업 측이 법정 다툼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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