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4월 16일 10:4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865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스탠리 제번스는 그의 저서 <석탄 문제(The Coal Question)>에서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을 제시했다. 이는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단위당 소비 비용이 낮아져 오히려 에너지 소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현상을 뜻한다. 인공지능(AI)와 빅데이터 기술이 전력 시장의 혁신을 주도하며 에너지 소비 효율성은 극대화됐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소비 증대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변화에는 단순한 에너지 비용 절감 이상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비롯한 기업 경영진은 제번스의 역설이 암시하는 장기적인 에너지 소비 패턴 변화와 재무 리스크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늘어나는 전력 수요…AI 통해 예측 및 최적화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력소비 증가율은 4.3%를 기록했고, 2027년까지 매년 4%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3년 전력소비 증가율인 2.5%를 상회하는 것으로, 매년 일본의 전력 수요량과 맞먹는 전력량이 추가되는 수준이다. 국내 전력시장 또한 2023년까지 5년간 전력 소비 증가율이 연평균 1.5~2%를 기록했으며, 장기적으로도 2.5%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서 AI를 활용한 효율적인 전력 시장 운영 및 활용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력 수요와 공급의 정확한 예측 및 최적화 능력이다. AI 기반 예측 시스템은 기상 정보, 생산 계획, 과거 전력 소비 패턴, 사회 경제적 요인 등 다양한 변수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통합해 수요를 예측하도록 설계됐다. 이는 과거 정보를 바탕으로 한 전통적인 통계 기반의 예측 모델보다 훨씬 정확하다. 또한 시간대별, 지역별로 전력 수요를 정밀하게 예측할 뿐만 아니라, 비상 상황과 같은 비정형적 요인도 고려할 수 있다.
전력 공급 측면에서도 AI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날씨에 크게 의존하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량 예측에 머신러닝 알고리즘 등 AI 기술이 도입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상 데이터와 발전 설비의 상태 정보를 분석해 발전량을 예측하고, 계통 운영자는 보다 안정적으로 전력망을 운영할 수 있다. 더불어 AI는 수요 반응(Demand Response) 프로그램을 최적화하는 데에도 활용된다. 실시간 가격 신호에 기반한 지능형 수요 관리 시스템은 소비자가 전력 사용을 관리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AI, 전력 거래 및 가격 예측에도 활용
다양한 형태의 전력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거래 최적화와 가격 예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과 같은 AI 기술은 복잡한 시장 환경에서 최적의 입찰 전략을 수립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통해 발전 사업자와 판매 사업자는 AI 알고리즘을 통해 시장 상황에 맞는 가격을 제시하고, 거래량을 조절해 수익을 최대화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전력 거래 플랫폼인 '노르드 풀(Nord Pool)'은 AI 기반 거래 시스템을 도입해 참여자들의 거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또한 AI는 전력 가격의 단기 및 중장기 예측에도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시계열 분석에 특화된 ‘장단기 기억(Long Short-Term Memory, LSTM)’ 네트워크와 같은 딥러닝 모델은 전력 시장의 복잡한 가격 변동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이는 발전 사업자의 생산 계획, 판매 사업자의 계약 전략, 대규모 소비자의 전력 구매 결정 등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전력 시장의 효율화에 기여한다.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은 전력 시스템의 핵심 요소다. 실시간 부하 분산과 전력 흐름 최적화에 AI가 적용되면서 송전 손실을 최소화하고 계통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것처럼 AI는 전력망 운영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AI는 전력망의 고장 진단 및 예방 유지보수에도 활용된다. 센서 데이터와 장비 상태 정보를 분석해 잠재적 문제를 사전에 감지하고,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전 사고를 줄이고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하며 전력망의 수명을 연장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데이터 분석역량 키우고 조달전략 다양화해야
이런 환경에서 기업의 의사결정자가 고려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에너지 데이터의 분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에너지 소비 비중이 큰 기업이라면 AI 기반의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과 전력 데이터 플랫폼을 도입해 전력 사용 현황 및 소비 패턴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절감하고 소비 증가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는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둘째, 유연한 전력 조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전통적인 고정형 전기요금제 대신, 가격 입찰시장(Price-Biding Generation Pool, PBP) 계약, 전력 파생상품 헤지 전략, 분산형 에너지자원(Distributed Energy Resource, DER) 연계 조달 등 다변화된 조달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국내 전력 시장의 성장률을 감안해 장기 계약과 단기 거래를 혼합한 유연한 조달 전략이 요구된다.
셋째, ESG 경영과 재무 전략의 통합을 고려해야 한다. AI 기술을 통한 탄소 배출량 분석 및 전력 사용 최적화 데이터를 활용해 ESG 목표와 연계된 재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탄소배출권 거래, 녹색채권 발행 등 금융 상품을 통해 환경 비용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동시에 장기적 자금 조달 다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넷째, AI 기반의 리스크 시뮬레이션 도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력 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예상치 못한 소비 증가 리스크에 대비해 시나리오 기반의 AI 리스크 분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전력 소비 및 비용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최악의 경우에 대비한 재무적 완충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
국내외 기업의 AI 활용 사례와 시사점
국내 SK E&S와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AI 기반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전력 소비 예측 정확도를 높이고, 배출량 감축을 통한 ESG 경영 목표 달성을 위한 재무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SK E&S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해 전력 거래 리스크를 낮췄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2022년부터 재생에너지 통합관리 서비스 사업을 본격화하고, 2024년 6월부터 제주에서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 VPP) 사업을 시작함으로써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해외에서는 구글이 딥마인드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를 15% 이상 절감했고, 에너지 기업인 에넬그룹(Enel Group)이 AI 기반 전력거래 시스템으로 시장 변동성 리스크를 10% 이상 낮춘 사례가 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에너지 기술 혁신이 단순한 비용 절감 효과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소비 패턴 변화와 이에 따른 재무 리스크 관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외 사례에서 보듯이 AI는 전력 시장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자는 전력 비용 절감과 장기적인 에너지 소비 증가 가능성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경험을 보유한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들은 기업의 AI 도입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전력 소비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적인 접근법은 기업이 혁신을 주도하고 재무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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