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월 의장 임기는 내년 5월 15일까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인 2017년 지명해 2018년부터 4년간 의장을 맡았고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그를 연임시킨 결과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 해임을 주장하는 이유는 ‘금리 인하가 더뎌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은 유럽중앙은행(ECB)처럼 오래전 금리를 인하했어야 했으며 지금이라도 내려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탈리아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파월 의장 해고를 계획하고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만약 그가 금리 인하 정책을 변경하지 않는다면”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유가가 배럴당 60~65달러로 하락하고 식료품 가격도 내려갔다”며 “금리를 인하하면 더 나은 상황이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날을 세웠다. 파월 의장이 전날 ‘트럼프 관세’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 심기를 건드렸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정책에 대한 시각차를 이유로 파월 의장을 해고하는 건 법적으로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Fed 설립 근거법인 연방준비제도법에 따르면 Fed 의장과 이사 해임엔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다. 법원은 그간 이를 ‘부정행위’나 ‘직무 태만’으로 해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해임하면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수정헌법 2조2항은 대통령에게 연방 공직자를 ‘지명’할 권한만 주고 상원에서 ‘조언과 동의’ 과정을 거쳐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인사권을 휘두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다만 해임에 관해서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
해임 기준에 관해 가장 중요한 판례는 1935년 나온 ‘험프리의 집행자 대 미국’ 판결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대통령이 1933년 윌리엄 험프리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을 이유 없이 해임하자 대법원이 부당하다고 판단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위원은 비효율성, 직무 태만, 부정행위를 이유로 대통령에 의해 해임될 수 있다”는 FTC 규정을 들어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법에 명시된 사유로만 제한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취임 직후 그는 그윈 윌콕스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 위원과 캐시 해리스 공무원성과체계보호위원회(MSPB) 위원장을 해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곧바로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베릴 하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지난달 두 사람이 제기한 복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트럼프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항소했는데, 항소법원에선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사건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항소법원은 대통령이 독립 기관 위원을 해임할 수 있는지 심리 중이며 조만간 판결할 예정이다.
대법원의 기류는 미묘하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 성향이 6명, 진보 성향이 3명이다. 보수파 중 3명은 트럼프가 집권 1기에 임명했다. 이 중 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과 닐 고서치 대법관은 험프리의 집행자 판결이 ‘잘못된’ 선례라고 주장한다. 파월 의장은 스스로 사임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작년 11월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하지만 Fed는 윌콕스와 해리스 관련 소송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트럼프가 파월을 해임하고 파월이 이에 불복해 소송전이 벌어지면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 권한을 규정하는 핵심 판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금융시장 불안과 법적 논란을 이유로 파월 의장 해임에 반대하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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