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존 숲의 사각거림, 체르노빌 땅을 흔드는 작은 진동, 파주 비무장지대(DMZ)를 지나는 바람….
남자는 언제나 이런 장소로 훌쩍 떠난다. 그곳에서 ‘소리’를 채집한다. 예측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의 흔적과 세계의 기억을 담아 미국 뉴욕으로 돌아온다. 여자는 남자가 녹음해온 시간의 흔적을 함께 듣는다. 마음으로 떠나는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쓴다. 시가 되기도, 소설이 되기도, 짧은 문장이 되기도 한다.

두 사람이 10년간 함께한 작업과 한국 땅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 등 8점의 영상 및 드로잉, 설치 작품이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다. 지난 19일 서울 남창동 복합문화공간 피크닉에서 개막한 전시 ‘끝나지 않을 대화(Correspondences)’에서 만난 스미스는 “스테판의 소리는 기억이고, 나의 시는 응답이다”며 “이 전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대화의 일부”라고 했다.
남산 자락에 있는 4개 층의 전시 공간은 옥상까지 차곡차곡 이들의 작품으로 쌓였다. 크라스닌스키가 역사적인 장소들을 찾아가 수집한 소리에 스미스의 시 읽는 목소리가 겹친다. 고대 신화 속 메데이아의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데이아’,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를 기록한 ‘체르노빌의 아이들’, 1946년부터 현재까지 대형 산불과 생태계 파괴를 다룬 ‘산불’ 등이 이어진다. 8편의 영상 작품은 각각 독립적인 서사를 갖고 있지만, 스크린끼리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이 전시를 단순히 교훈적이라거나 사회고발성 의도를 지녔다고 치부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수도자와 예술가와 자연’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안드레이 루블료프’를 인용해 예술가의 소명과 자연의 관계를 사유한다.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메데이아의 이야기를 시적 언어로 풀어내는데, 여기엔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 ‘메데이아’가 차용됐다. 세기의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의 영화 장면이 겹친다.
스미스는 1975년 1집 ‘호시스(Horses)’로 데뷔해 수많은 히트곡을 내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오른 ‘로큰롤의 여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모든 예술 여정의 출발점은 문학에 있다. 랭보의 시에 반해 시인으로 시작했고, 화가가 되고 싶었던 시기도 있다고. 그는 “시를 쓰다 로큰롤에 우연히 빠졌는데, 밴드 활동은 협업이 기반이어서 다른 예술 장르나 예술가와 함께 작업하는 일을 평생 해왔다”고 했다.
한국 전시를 위해 전시장에는 DMZ의 토양과 생태를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DMZ 인근에서 자생하는 버섯과 식물을 채집해 소규모로 재현한 테라리움도 설치됐다. 스미스는 한글 쓰기를 연습해 또박또박 이렇게 적었다. ‘자연에는 경계가 없다.’ 전시는 7월 20일까지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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