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는 더 많은 철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 간의 알력 다툼 또는 특정 정치인들의 파워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철도가 개발되다 보니, 정작 철도가 필요한 곳에는 안 만들어지고 불필요한 곳에 만들어지는 경우도 생기고 있어요.”
도시문헌학자이자 답사가인 김시덕 박사는 “철도는 집값을 올려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시민들의 정시성을 확보해주기 위한 수단”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박사를 만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동해선, 서해선 등 최근 개통한 노선을 비롯해 우리나라 철도 계획의 현주소를 물었다.

최근 철도의 가능성에 다시 주목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요즘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도로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잖아요. 반면 고속철도의 속도와 기능은 좋아지고 있어요. 특히 대심도가 만들어지다 보니 토지 보상비가 많이 감소되고 공사비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됐죠. 서울로 출퇴근하거나 경기도를 방문하는 이들의 이동 시간을 줄여주는 획기적인 수단으로 재차 주목받은 거죠. 예전부터 철도는 그런 기능을 해 왔는데 어느 시점부터 관심이 떨어졌어요. 흉물처럼 취급당했죠. 다만 너무 과대평가할 건 없어요. 특히 최근에는 부동산 업계에서 호재가 없었잖아요. 그렇다 보니 GTX 같은 철도가 주목받은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철도 개통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하나요.
“지역경제 발전과 부동산 가격 상승은 꼭 관계는 없습니다. 물론 가격이 오르는 곳도 있죠. 그런데 GTX 개통과 부동산값이 오르는 건 구분해서 봐야 해요. 역이 생기는 경기도 지역에는 영향이 클 수도 있어요. 그런데 GTX가 통과하는 서울 시내의 값이 오르는 건 저는 좀 이해가 안 되긴 해요. GTX는 경기도 사람들이 서울로 출퇴근하기 위해 이용하는 거고, 서울엔 다른 이동 수단이 많거든요. 왜 굳이 GTX를 탄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표적인 게 GTX 남부 구간이잖아요. 남쪽은 지금 이용객도 적고 여러 문제가 있어요. GTX의 대안도 많고요. 반면 다른 교통수단이 빈약했던 곳, 예를 들어 서울역부터 운정중앙역까지는 영향이 큽니다. 예전에는 킨텍스에 가려면 3호선 대화역에 내려서 한참 걸어가야 했어요. 이제는 킨텍스역에서 내리면 3분 만에 갈 수 있죠. 서울역에서 21분이면 운정중앙역에 도착하고요. 엄청난 혁신이죠. 집값과는 큰 관계가 없는 거예요. 오히려 철도가 편하게 뚫리면 그 동네 상권은 무너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나가서 놀거든요.”
철도가 지역경제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는데, 어떤가요.
“분야에 따라 득이 되는 측면도 있고, 마이너스가 되는 면도 있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건데요. 고속철도가 뚫리면 특히 지역 병원의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관광 수요는 늘어나겠지만 의료와 같은 기본 인프라는 무너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SRT가 생기면 그 지역 내 병원은 적자예요. SRT를 타고 수서로 가서 병원 셔틀버스로 갈아탄 뒤 5대 대형병원으로 가거든요. 관광을 위해 그 지역 병원을 망하게 할 것인지는 고민해볼 문제죠. 그래서 저는 지자체장들이 지역을 위한다는 이유로 고속철도역을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건 사실 모순이라고 봐요. 문제는 하나 더 있어요. 철도역만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시내 곳곳으로 가는 대중교통망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자체들은 자동차만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특히 광주송정역은 대규모 주차장을 만들었죠. 환경을 위해 철도를 만든다면서 시내를 자동차로 이동하도록 하면 이것 또한 모순이죠. GTX-A의 남부 구간이 저조한 게, GTX역까지 이동하는 게 힘들기 때문이에요. 역까지 자가용으로 이동할 바에는, 그냥 서울까지 차 타고 이동하겠죠. 철도 개통의 효과를 보려면 일단 지자체가 얼마나 대비를 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성남이나 용인은 대비를 덜 했다고 생각해요. GTX역과 연결되는 교통망 정비를 잘 안 해 놨다는 게 첫 번째죠. 또 하나는 서울 강남 등으로 이동할 만한 다른 교통수단이 기존에도 많았어요. 용인이나 성남의 어느 아파트에서 강남에 위치한 직장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봅시다. GTX를 타기 위해 대심도로 내려가서 열차를 타고 가는 것과 버스전용차로를 이용해 빨간 광역버스를 타는 걸 비교해보자고요. 집 근처에서 광역버스 타고 가는 게 빠르다고 봅니다. GTX가 만능이 아닌데도 호재가 없다 보니 만능처럼 떠받든 측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래서 하는 겁니다. 철도 개통이 필요한 지역은 오히려 외곽이에요. 일산이나 신안산선의 시흥은 앞으로 좋아질 겁니다. 특히 미래에 시흥시청역 주변이 굉장히 중요해질 거예요. 월곶판교선, 신안산선 등 많은 철도가 거쳐가게 될 겁니다. 그런 곳을 위해 역을 만드는 거지 서울 시내 집값을 올리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교통망 대비를 잘한 곳이 있다면.
“파주는 대비를 철저히 했어요. 운정중앙역을 한 번 가보세요. 내리자마자 버스환승센터가 있어요. 그전에는 이 지역 교통망이 시청 중심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역이 생기면서 시내버스 라인을 모두 이쪽으로 집중시켜요. 밖에 나가서 갈아타지 않고 같은 건물 안에서 해결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오산역, 1호선 송내역 같은 곳이 환승센터를 잘 갖춰 뒀습니다. 비가 와도 맞지 않고 내부에서 열차와 버스, 택시를 탈 수 있어요. 그런 과정을 지자체가 고려해야 되는 겁니다.”
철도역이 호재로 작용하는 지역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수요가 실제로 존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물론 이건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측면도 있죠. 예를 들어 5호선 마곡역이 처음 만들어질 때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왜 역을 만들었냐고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가 다 사라졌죠. 송도신도시 쪽 인천지하철도 처음 개장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지금은 ‘처음 만들 때부터 경전철이 아니라 중전철로 크게 만들었어야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도시가 커지고 남쪽의 송도와 북쪽의 검단, 청라를 연결하려니 경전철로는 한계가 생기는 거죠. 요즘 들어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따지고 보면 중전철을 투입해야 맞는 사업인데 예비타당성 조사와 민간 투자를 위해 경전철을 택한 거죠. 나중에 수요가 생기고 후회하는 경우가 발생해요.”
과거 일본에서도 광범위한 철도망 확충이라는 목표 아래 대대적인 투자가 단행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인구구조가 바뀌면서 다수의 노선이 폐선됐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우려는 없을까요.
“사실 한국은 철도를 더 늘려야 돼요. 일제강점기 때는 철도 위주의 개발을 했죠. 동해선은 이미 1945년 시점에 거의 완공 상태였고요. 그러다 일본이 패전했고, 1960년대 경제 개발을 시작할 시점에 국제기구들이 ‘너무 철도 위주로만 개발하지 말고 고속도로를 깔아라’라는 조언을 하게 됩니다. 철도를 놓는 데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투자를 안 한 배경도 있겠죠. 1969년 시점의 철도 건설 계획도를 보면 그 당시에 세워 뒀던 계획을 이제야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오래된 숙제를 뒤늦게 해결하고 있는 거죠. 특히 철도가 절박하게 필요한 지방들이 있습니다. 지역에 철도가 들어서면 이주인구가 늘어날 수 있거든요. 모든 사람이 대도시에 거주하길 원하는 건 아니잖아요. 중소도시에 살면서 서울, 부산을 오가고 싶은 사람도 존재합니다. 도로와 철도의 큰 차이는 정시성이거든요. 시민들의 정시성을 확보해준다는 점에서 철도가 필요합니다.”

서해선과 동해선의 수요에 대해서는 어떻게 전망하나요.
“서해선은 아직 알 수가 없는 게 중간이 끊겨 있거든요. 일단 신안산선과 연결이 된 후에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신안산선은 수요가 확실한 노선인데 서해선을 같이 쓰게 돼 있어요. 철교 하나가 아직 완성이 안 된 상태입니다. 제가 늘 강조했던 건데요. 2030년대가 되면 진가가 드러날 겁니다. 또 최근 연결된 동해선은 이미 올해 봄부터 진가가 드러나고 있죠. 동해선은 관광 산업이 유일한 목표인 철도예요. 원래는 북한 원산부터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잇는 구상도 있었는데 지금은 북한 쪽에서 끊기면서 그 의미가 사라져 버렸죠. 요즘 주말엔 동해선 타는 표가 없어서 문제라고 하죠. 현재 동해선을 다니는 열차의 수 자체가 적어요. 노선은 깔았는데 열차를 못 만들고 있습니다. 몇 년 치가 밀려 있어요. 철도를 까는 것과 차량을 도입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그래서 제가 2030년대를 계속해서 강조하는 겁니다. 그때쯤 되면 차량 공급 문제가 해결될 겁니다.”
전국 철도 노선 중에 주목할 만한 신설 노선이 있다면.
“부전~마산 복선전철이 개통할 예정인데요. 창원, 김해, 부산이라는 핵심 지역을 연결해주는 철도입니다. 마치 GTX와 같은 거예요. 그쪽 지역은 워낙 철도보다는 시외버스가 대종을 이뤘어요. 복선전철로 이 지역이 연결되면 앞으로 김해 남부 신도시, 부산 신항 신도시를 이어주기 때문에 못해도 500만~600만 명이 혜택을 입고 인구 재배치까지 이뤄질 겁니다.”
철도 지하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철도가 아직 없는 지역도 있는 상황에서, 이미 철도가 있는 지역의 집값을 올려주려고 지하화하는 건 낭비라고 생각해요. 기존에 노선이 있는 곳에 왜 철도 개발을 또 해야 하냐는 겁니다. 그거야말로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거 아닐까요. 아직 국가에 철도가 필요한 데가 많잖아요. 그리고 철도 지하화를 실제로 실현하기도 쉽지 않고요. 서울 시내에 있는 지상철을 지하화하는 데 100조 원이 듭니다. 실행하는 게 가능할까요. 서울시가 철도 지하화에 25조 원이 든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 공약이라고 봐요. 그리고 최근에 철도 지하화 사업 선도지구가 발표됐는데요. 안산 일부, 대전 일부, 부산 일부입니다. 그중 대전과 부산은 지하화가 아니라 사실상 입체화입니다. 이건 지하화라고 말하면 안 되죠. 실질적으로 지하화가 어렵다는 걸 알다 보니 ‘트램’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트램은 철도의 분위기만 풍길 뿐 버스에 가깝습니다. 철도를 놓으려면 제대로 된 지상철, 고가철도를 해야죠. 그런데 고가철도는 슬럼화된다는 이유로 자꾸만 다른 이야기를 꺼내잖아요. 그러다가 허송세월만 보내게 된다는 거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철도 개발의 미래에 대해 전망한다면.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필요한 철도 노선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자체 간의 알력 다툼의 결과로, 또는 특정 정치인들의 파워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철도가 개발되다 보니, 정작 필요한 곳에는 안 만들어지고 불필요한 곳에 만들어지는 경우도 생기고 있어요. 철도 지하화 논쟁도 그런 이유에서 생겨났다고 봐요. 국가 차원에서 전체적인 시각으로 철도 계획을 짜는 게 필요한데 그런 능력을 상실했다는 게 제 관점입니다. 사실 미래를 어둡게 보고 있긴 합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이승재 기자
-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