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무원(롯데+공무원).’
국내 주요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롯데그룹 직원을 이렇게 부른다. 임금체계와 기업문화, 업무 강도 측면에서 롯데는 공무원만큼이나 보수적이란 이유에서다. 롯데그룹은 국내 주요 기업 중 가장 늦은 2018년 연봉제를 도입했지만 연차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연공서열 시스템은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분위기도 그대로다.
유통 화학 등 주력 사업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설’에 휩싸인 롯데그룹이 칼을 빼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무원 같은 급여 시스템을 직무급제로 바꿔 ‘일하는 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난국을 돌파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직무급제 도입은 핵심 계열사인 롯데백화점과 롯데케미칼, 롯데웰푸드부터 시작한다. 각 계열사는 핵심 직무를 레벨5로, 비핵심 직무를 레벨1로 구분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롯데케미칼의 핵심 연구개발(R&D) 파트는 레벨5, 공장 운영을 담당하는 생산관리직은 이보다 낮은 레벨을 부여받는 식이다. 롯데백화점에선 시장을 조사하고 상품을 기획하는 상품개발자(MD)가, 롯데웰푸드에선 마케팅 담당자 등이 높은 레벨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높은 레벨 직군에 속한 직원은 자연스럽게 높은 연봉을 받는다. 인사평가에서 똑같이 ‘B’를 받더라도 레벨5 직군이 레벨1보다 기본급을 20% 이상 더 받기 때문이다. 기본급은 전체 임금의 50% 정도를 차지한다.
레벨이 낮은 직군에 속해도 성과를 내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롯데가 도입하는 방식이 직무급제와 성과급제를 합친 형태여서다. 레벨1에 속한 직원이 개인 인사평가에서 S등급을 받았다면 레벨5 직원에 비해 직무급은 덜 받아도 성과급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더 중요한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직원에게 보상해주자는 취지”라며 “직원 전체 인건비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 중에서 직무급을 도입하는 건 롯데그룹이 처음이다. 삼성그룹은 2016년 직급체계 단순화, 2021년 성과기반 승격 등을 도입했지만 직무급제로 이어지진 않았다. 롯데그룹 역시 노조를 중심으로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롯데는 위기 돌파를 위해 직무급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산 매각과 희망퇴직 등 임시방편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문화 구축’이란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그룹의 체질이 온전히 바뀐다는 이유에서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등 주요 계열사의 실적 부진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고 일부 계열사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자산 매각 작업도 한창이다. 롯데케미칼은 파키스탄 자회사 LCPL을 1275억원에, 일본 화학사 레조낙 지분 4.9%는 2750억원에 매각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낡은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제도를 바꾸고 본격적인 체질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원/김우섭/성상훈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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