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고령층의 디지털 미디어 중독이 위험 수위라는 의료계 진단이 나왔다. 유튜브 등의 1인 미디어를 활용한 뉴스 소비에 의존해 정치 편향이 굳어지는 ‘필터버블(특정 성향 강화)’에 갇히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가족과의 교류가 줄어 사회적 고립감이 큰 노인일수록 더 위험하다는 평가다.
국내 중독연구 권위자인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3일 한국의학바이오기사협회가 주최한 ‘노인세대 디지털 미디어 중독’ 주제 미디어아카데미에서 “고령층은 다른 연령에 비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확득한 정보가 신뢰할만 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며 “외로움과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디지털 미디어 중독에 빠지는 고령층이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튜브 등을 통해 원하는 정보만 취하는 확증편향이 계속되면서 장기적으로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터넷을 검색할 때 유튜브 등 동영상을 주로 이용하는 비율은 60~70대에서 가장 높았다. 70대 이상 이용률은 62.9%, 60대는 61.6%로 이용률이 가장 낮은 20대(48.9%)보다 10%포인트 가량 벌어졌다.
고령층은 인터넷 검사를 할 때 가장 신뢰하는 사이트로도 유튜브를 꼽았다. 고령층은 다른 연령대보다 디지털 미디어 사용 시간이 길지 않지만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튜브에 더 많이 의존했다.
쉽고 재밌는 데다 비용도 들지 않은 유튜브의 속성을 고려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노인들이 유튜브 1인 방송 등을 통해 주로 ‘뉴스’만 소비하는 게 문제다. 이전 시청 기록 등에 따라 비슷한 성향의 영상을 노출해주는 ‘알고리즘’과 만나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교수는 “정보 검색에 취약한 노인층은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덜 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며 “정치 성향이 일치하는 뉴스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접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인정받는 ‘보상’이 강화된다”고 했다. 알코올이나 도박 등에 중독되는 것과 같은 패턴이 유튜브 의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최근 불거진 서부지법 난동 사태는 다른 중독 환자들이 보이는 ‘금단’ 현상을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자신의 정치적 지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상실감’에 대한 반응이 폭력 행동 등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검증 없이 퍼지는 ‘가짜뉴스’의 폐해는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감염 예방 백신을 믿지 않고 잘못된 의료정보를 맹신하는 ‘인포데믹(정보+감염병)’도 그 중 하나다.
노인들이 정치 유튜브를 맹신하는 현상은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영국 호주 싱가포르 등 각국 정부가 올바른 디지털 미디어 사용을 위해 ‘디지털 포용’ 정책을 확대하는 이유다. 다만 국내에선 디지털 산업 육성에만 초점이 맞춰져 중독 예방 정책 등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디지털 과의존은 ‘깔대기 효과’라는 용어처럼 빠질수록 점점 더 급속하고 심하게 진행된다.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 교수는 “지역기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늘리고 유튜브 등에 담배 경고 문구처럼 ‘편중된 콘텐츠에 몰입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문구를 표기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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