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발표한 2일 연 4.2% 안팎에서 7일 연 3.886%로 하락했다. 뉴욕증시도 급락했다. 여기까지는 예상되는 수순이었다. 통상 주가 급락 땐 안전자산인 미 국채로 자금이 몰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용’일 것이란 시장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강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국채 금리가 뛰기 시작했다. 상호관세 발효일인 9일엔 연 4.561%까지 급등했다. 국채 값이 폭락한 것이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관세 90일간 유예’를 꺼냈다. 월가에선 “채권자경단이 돌아왔다”는 말이 나왔다.
채권자경단은 월가 유명 이코노미스트이자 야데니리서치 대표인 에드 야데니가 1980년대 처음 썼다. 당시 야데니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과 재정적자 확대에 불만을 품은 투자자들이 국채를 매도하는 기류를 포착했다. 폴 볼커 당시 미 중앙은행(Fed) 의장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재정 확대는 물가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있었다. 이에 채권시장에서 미 국채 투매가 나타났고 인플레이션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해 Fed는 기준금리를 더 올릴 수밖에 없었다. 야데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유예에 대해 ‘채권자경단이 또 홈런을 쳤다’고 썼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그동안 채권자경단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며 ‘채권자경단에 드리는 사과’라는 글을 싣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도 국가가 채권시장의 눈치를 본 사례가 적지 않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18세기 후반부터 2015년까지 만기 없이 이자만 지급하는 국채(콘솔)를 발행했다. 이 국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부 채권 중 하나다. 이 기간 영국에서 국왕이 여섯 번 바뀌고 두 차례 세계대전이 있었지만 영국 정부는 한 번도 이자 상환을 멈춘 적이 없다. 이자를 제때 못 갚으면 채권시장에서 정부가 신뢰를 잃어 정작 돈이 필요할 때 돈을 빌릴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어려워도 꼬박꼬박 이자를 지급한 것이다.
2022년엔 리즈 트러스 당시 영국 총리가 뚜렷한 재정 안정책 없이 450억파운드(약 81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해 채권시장이 또다시 요동쳤다. 시장은 영국 정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을 예상하고 국채 투매에 나섰다. 트러스 총리는 중앙은행을 동원해 채권을 매입했지만 급격한 국채 금리 상승과 파운드화 가치 급락을 막지 못했다. 결국 트러스는 감세안 대부분을 철회하고 취임 44일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10~2012년 남유럽 경제위기 때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재정이 좋지 못한 국가들이 채권자경단에 ‘공격’받았다. 투자자들은 이들 국가의 국채를 대거 매도했고 이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이달 초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발표로 국채시장이 요동칠 때 미 국채 최대 보유국인 일본의 투자자들이 200억달러 이상의 외국 채권을 매각했다. 정부 차원에서 매각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상당수 민간 투자자가 미 국채를 팔았을 확률이 높다. 일각에선 중국 매각설도 제기된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자 중국은 물론 다른 나라도 언제든지 미국이 자신들의 달러 자산을 묶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고, 이에 따라 각국이 여차하면 언제든 미 국채 등 달러 표시 자산을 팔 준비를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미 국채의 신뢰마저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위기와 불확실성이 발생할 때 미 국채로 돈이 몰렸지만 최근엔 트럼프 관세 때문에 미국이 불안의 진앙이 되며 채권자경단의 공격에 취약한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 채권자경단(bond vigilantes)
정부가 과도한 재정지출 등 반시장적 정책을 펼 때 국채를 투매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투자자를 일컫는 말이다. 특정 세력이나 단체가 아니며 국채를 보유한 개인, 기관, 외국 정부 모두 상황에 따라 채권자경단이 될 수 있다. 미국 경제학자 에드 야데니가 1983년 만든 말이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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