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변 공간을 설계할 때 철저하게 사람의 눈높이와 걸음 속도에 맞춰야 명소가 만들어집니다.”헬레 쇠홀트 덴마크 겔(Gehl) 건축사무소 최고경영자(CEO·사진)는 29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겔 건축사무소는 ‘휴먼 스케일 건축’(인간다운 건축)으로 잘 알려진 얀 겔 덴마크왕립예술대 교수가 설립한 덴마크 대표 도시 디자인 전문 기업이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은 인구 140만 명을 보유한 소도시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람 친화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그 중심에는 자전거 도로 확충과 보행자 중심의 도시 재구성이 있다. 쇠홀트 CEO는 “코펜하겐은 오래전부터 섬과 강, 해협으로 나뉜 지형 때문에 대중교통망이 불균형하게 발달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와 보행자 중심의 도로망 확충 전략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코펜하겐의 수변 공간 재개발 과정에서도 이 같은 원칙이 적용됐다. 한때 화물선이 오가던 항만 지역인 뉘하운 일대는 산업 쇠퇴와 함께 슬럼화 위기에 처했다. 살아생전 가난했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저렴한 집값 덕분에 이곳에 거주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코펜하겐시는 겔 건축사무소 등과 손잡고 수변 접근성을 최우선 목표로 삼은 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워터 덱, 인공 운하, 수변 산책로 등을 조성해 시민이 어디서든 강변을 산책할 수 있도록 했다. ‘도시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는 겔 건축사무소의 철학이 담겼다. 쇠홀트 CEO는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도시를 체험한다”며 “단순히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머무르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도시의 활력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 결과 뉘하운은 시민과 관광객이 넘쳐나는 명소로 변모했다. 인근 스트뢰게트 거리엔 차량 없는 보행자 전용 구역이 설치됐다. 차가 아니라 사람과 자전거가 광장을 가득 메우는 모습이 코펜하겐의 새로운 일상이 됐다. 최근 10년간 자전거 통행량이 60% 넘게 증가했고 보행자도 두 배 이상 늘었다. 자연스럽게 경제적 가치가 상승해 집값이 코펜하겐에서 비싼 지역 중 하나가 됐다.
이는 한강 접근성 개선 사업과도 닮은 점이 많다. 쇠홀트 CEO는 “한강처럼 큰 강이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를 때 보행 접근성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시민 삶의 질이 달라진다”며 “한강을 단순히 바라보는 공간이 아니라 직접 걸어서 다가가고, 즐기며, 머무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코펜하겐=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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