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착순 파격가', '할인 분양'….
대구 도심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는 현수막이다. 대구에는 미분양 주택이 9177가구가 있다. 특히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통하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3252가구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서울 강남은 아파트값이 오른다지만 여기선 딴 세상 얘기"라며 "가격이 내려가도 거래가 끊겨 사무실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미분양 물량은 여러 이유로 생길 수 있다. 청약 신청에 오류가 있어 부적격 판정을 받거나 당첨되고 돈을 내지 못해 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가 있다. 부동산이 활황이면 이런 미분양은 금방 소진되지만 시장이 침체했을 때는 잘 해소되지 않고 쌓인다. 통상 정부는 전국 미분양 주택이 6만 가구를 넘어서면 위험 수위로 본다.
분양을 마치고 집을 다 지어놓기까지 했는데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준공 후 미분양'이 된다. 악성 미분양이 쌓이면 사업을 추진한 기업에는 타격이 크다. 아파트 분양 수익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미분양 물량을 직접 보유한 채 중과세 부담까지 떠안느라 자금난이 가중된다. 건설사들이 준공 후 미분양을 악성 미분양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이른다. 건설투자는 한 번 확장기에 들어서면 오랫동안 든든하게 경제성장률을 떠받치고 고용 창출 효과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경기를 민감하게 타기 때문에 불황기에는 더욱 심하게 흔들리기도 한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8920가구. 이 중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5117가구다. 한 달 전에 비해 5.9% 늘면서 11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에 4574가구, 지방에 2만543가구가 준공 후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대구에 이어 경남(3026가구), 경북(2715가구), 부산(2438가구) 순으로 많다. 업계 관계자는 "악성 미분양 10채 중 8채가 지방에 쌓여 있다"며 "지역 중견·중소 건설업체들이 느끼는 자금 압박은 한계 수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래의 주택 공급을 가늠할 수 있는 선행 지표인 인허가, 착공, 준공 실적은 감소하고 있다. 올 1분기 전국 주택 인허가(6만5988가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5% 뒷걸음질했다. 착공(3만4021가구)은 25.0%, 준공(10만4032가구)은 16.9% 줄었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가면 시간이 흐른 뒤 주택 공급난이 다가올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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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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