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4,108.62
(8.70
0.21%)
코스닥
915.20
(4.36
0.47%)
버튼
가상화폐 시세 관련기사 보기
정보제공 : 빗썸 닫기

그녀의 죄책감은 진짜였을까…끝없는 위로 속 남은 건 위선

입력 2025-05-04 18:24   수정 2025-05-05 00:31


지난달 30일부터 열리고 있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은 라두 주데 감독의 루마니아 영화 ‘콘티넨탈 ’25’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은곰상(각본상)을 받은 작품이다.

루마니아 제2 도시인 클루지에서 집행관으로 일하는 여성 오르솔랴(에스테르 톰파 분)는 건물 보일러실을 무단 점거한 노숙자를 퇴거시킨 직후 그의 자살을 목격한다. 오르솔랴는 ‘집행관 때문에 불쌍한 노숙자가 내몰렸다’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언론의 희생양이 된다. 헝가리계 이민자인 오르솔랴는 “너희 나라로 꺼지라”는 인종차별적 악성 댓글에 시달린다.

오르솔랴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소통한다. 남편과 엄마, 친구, 옛 제자, 성직자를 만난다. 비록 법적으론 노숙자의 죽음에 책임이 없지만, 도덕적 책임은 다른 문제다.

오르솔랴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불쌍한 노숙자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사회적 책임을 느낀다”고 얘기하며 슬픔에 잠긴다. 그렇다면 그는 착한 사람일까. 사실 오르솔랴는 위선적이다. 이미 세상을 뜬 노숙자를 현실로 불러내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고 “묘비에 꽃이라도 놔야겠다”면서도 정작 그가 묻힌 무연고자 묘지는 찾아가지 않는다. 10여 년 만에 만난 제자에게 힘들다고 털어놓더니 덜컥 불륜을 저지른다. 노숙자의 마지막 순간은 오르솔랴의 자기 위로를 위해 소비될 뿐이다.

오르솔랴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위로한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그의 심경을 진심으로 헤아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은 힘들어하는 아내가 여행에 동참하지 못할 것 같다는 데 실망하고, 엄마는 헝가리와 루마니아의 해묵은 감정만 뒤적거릴 뿐이다. 제자는 온갖 선불교 고승들의 선문답을 늘어놓지만 관심사는 오르솔랴와의 키스뿐이고, 교회의 사제는 신앙의 이름으로 죄책감을 정당화하며 그럴싸한 말만 늘어놓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일련의 구차한 양심 고백 뒤 나오는 침묵의 화면이다. 값비싼 카메라가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찍은, 아무런 소리가 삽입되지 않은 채 이어지는 도시의 무표정한 풍경들은 수많은 현학적 수사로 가득했던 오르솔랴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대비된다. 마치 “당신이라면 어땠겠느냐”는 질문을 던져놓고 답을 내리지 않는 것 같은 영화의 말미에 관객은 불편함이 가득해진다.

전주=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