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상선이라는 해운회사가 있다. 대장금엔 비할 바도 안 되는 무명에 가까운 기업이지만 HMM 다음으로 큰 국내 2위 해운그룹이다. 더 놀라운 건 재계 순위가 KT&G, 코오롱, KCC보다 높은 32위(자산 기준)라는 점이다. 2019년 당시 국내 5위 흥아해운을 인수한 뒤 5년 만에 회사 덩치를 세 배로 키운 결과다.최근 한국 전통 산업군에서 장금상선처럼 단기간 내 대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10년 치 통계를 봐도 업종 자체가 뜬 바이오와 정보기술(IT), 가상자산 관련 회사들이 고작이다.
회사 이름대로 중국 사업을 고수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중국 측 파트너인 시노트랜스가 합작사에서 철수한 뒤에도 중국 항로를 버리지 않았다. 중국과 무역이 많은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확장했다. 근거리 해운의 절대강자로 우뚝 서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북미 항로 일변도이던 한진해운이 망하고 현대상선(현 HMM)이 10년 가까이 적자를 내는 와중에도 이 회사는 끄떡없었다. 오히려 경쟁자가 줄면서 2000년 이후 줄곧 흑자를 내고 있다. 그 어렵다던 작년에도 매출과 영업이익을 두 자릿수 비율로 늘렸을 정도다.
장금상선만 위기에 강한 게 아니다. 국내 유일의 고무벨트 제조사인 동일고무벨트는 80년 가까이 ‘고무 외길’을 걸으며 지난해에도 성장 가도를 달렸다. 60년 넘게 용접 재료만 제조한 고려용접봉 역시 중국의 저가 공세를 이겨내며 지난해 이익을 늘렸다.
삼성전자가 휘청거릴 만큼 앞이 캄캄한 시기다. 그럼에도 SK하이닉스는 만년 2등에서 벗어나 최전성기를 구가 중이다. 그 과정에서 한미반도체 같은 ‘한국형 슈퍼을’도 탄생했다. 역대급 내우외환의 위기라고 해도 다 망하는 건 아니다. 역발상과 한 우물 경영으로 무장한 기업 사례에서 보듯 난세는 견딜 수 있고 얼마든지 영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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