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는 억대 용역비에 더해 고용 효과 등 계통평가가 요구하는 조건을 맞추려면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판단해 개발 사업을 보류했다. 정부가 계통평가를 도입한 이후 전력 규제 관련 신종 브로커가 등장하고 투기가 횡행하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
기업의 데이터센터 수요가 커지자 한국전력 출신 브로커가 컨설팅 시장에서 득세하고 있다. 전기 설비 등을 담당하던 엔지니어링 업체들은 계통평가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먹거리 등장에 퇴직자를 대거 영입했다. 이들 15개 업체는 정부가 계통평가 대행기관을 지정한다는 소식에 연합회 설립을 위한 태스크포스(TF)까지 발족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계통평가를 받으려는 업체를 대리해 전력망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민간 기관을 지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대행 비용 산정 기준을 마련할 때까지 잠정 보류했다. 일부 업체가 계통평가 통과를 대가로 성공보수까지 달라고 하는 등 과도한 용역비를 요구하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대지를 확보해 전력 공급계약을 체결한 뒤 고가에 매각하는 투기도 확산하고 있다. 변압기 부품 업체로 출발한 U사가 수도권 부지 네 곳을 인수해 전기 공급계약을 맺은 뒤 매각에 나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업체가 계통평가 시행 전 받아 놓은 전력 용량은 데이터센터 8개를 지을 수 있는 340㎿다. 업계에선 “부동산 개발과 무관한 업체가 ‘전기 알박기’를 통해 토지가격 상승 혜택을 보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부동산 시행사도 정부 규제가 낳은 기회에 올라타 큰 차익을 거두고 있다. S사는 경기 고양시 문봉동 데이터센터 부지를 인허가 조건부로 1850억원에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부지는 2022년 8월 약 550억원에 매입해 같은 해 12월 80㎿ 전기 공급계약을 맺은 곳이다. 인허가가 완료되면 이 회사는 부지 매입 2년9개월여 만에 1000억원 넘는 차익을 거둔다. S사는 고양시 식사동 데이터센터 부지도 조만간 국내 기업에 매각할 예정이다. 여기에서도 500억원 이상 차익이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식산업센터용 부지와 데이터센터용 부지는 투자 수익률 차이가 최대 10배까지 난다”며 “전기 공급 여부에 따라 부지 가치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정작 데이터센터가 필요한 실수요 기업은 정부의 계통평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과 함께 등장한 계통평가가 지난해 8월 시범 운영에 들어간 이후 수도권에 대규모 전력시설을 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한국전력은 계통평가 시범 운영 기간에 263건의 신청을 접수했지만 산업부 심사를 통과한 사례는 지난달 초 기준 7건(2.7%)에 그쳤다. 이 중 수도권 신청 건수는 157건이며 단 2건(1.2%)만 통과됐다. 서울 지역 통과 사례는 전무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시범 운영이 끝나는 6월 말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살펴보고 있다”며 “악용 사례를 모아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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