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유치원 졸업식에 간 적이 있다. 올망졸망 여느 일곱 살 아이들이 차례로 무대 위에 올라 귀여운 목소리로 장래 희망을 발표했다. 아이들의 꿈은 놀라웠다. 그 획일성 때문이었다. 그날 졸업하는 8명 가운데 6명의 장래 희망이 ‘의사’였다. 나머지 두 명은 유튜버였다. 6명 아이의 꿈이 모두 의사일 리는 없었을 터. 아이들의 미래는 일곱 살 때부터 부모에 의해 재단되고 있었다. ‘4세 고시’ ‘7세 의사 고시’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의료기관을 찾은 어린이가 지난 4년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는 뉴스를 보고 그날의 졸업식 장면이 떠올랐다.2019년 여름 항해를 시작했다. 바다는 만만치 않았다. 태풍의 가장자리를 지나며 20m 높이의 파도와 싸울 때는 무섭기도 했다. 때로는 육지의 집, 가족, 친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거친 파도, 바닷바람과 맞선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에게선 요즘 젊은이에게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단단함과 진중함이 엿보였다. 동원산업 선망선을 기준으로 해기사의 평균 소득은 또래 직장인보다 3~4배 높다. “마지막 항차에 만선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의 꿈은 동원산업 대표다.
올해로 만 90세를 맞은 1세대 창업자인 김 명예회장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안정적인 서울대 진학을 포기하고 바다로 갔다. 무급 선원에서 항해사, 항해사에서 선장, 선장에서 수산업체 임원이 됐다. 그리고 오늘날 동원그룹과 한국투자금융을 일궜다. 국가와 산업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가 없었다면 한국의 해양 영토는 한없이 작아졌을 것이다. 해양수산부 탄생도 언제 이뤄졌을지 모를 일이다.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 모델도, 한국인 밥상에 매일 오르내리는 참치캔도 없었을지 모른다.
김 명예회장과 그를 동경해 항해사가 된 청년의 이야기는 영유아기 어린아이 때부터 획일화된 성공의 공식으로 몰아넣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청년에게 그는 이야기한다. 꿈꾸고 상상하고 가슴 뛰는 삶을 살라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라고. 꿈을 꾸는 동안엔 누구나 영원히 청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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