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물류 허브'다. 유조선과 컨테이너선 등이 싱가포르 앞바다를 가득 메운 채 석유에서부터 전자제품, 자동차 등 모든 것을 수입하고 실어나른다. 이들 선박이 운반하지 않는 품목은 딱 하나다. 바로 전기다.
그간 싱가포르는 가스를 수입해 화력발전으로 전기를 자급해왔지만, 이제는 대안을 모색해야 했다.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도시국가의 특성상 땅덩어리가 좁아 태양광 패널을 깔거나 풍력발전소를 짓기도 쉽지 않았다.
세계 각국은 '전력망 연결'을 모색하고 있다. 친환경 전기를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아프리카 사막의 태양광이나 북해의 해상풍력처럼 지역별로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다른 국가들이 공유하면, 남는 전기를 굳이 저장하지 않아도 수요에 따라 나눠 쓸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데, 국가 간에 전력망을 연결하면 과잉 발전과 부족 사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모든 회원국이 국내 발전량의 최소 15%에 해당하는 전기를 수출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력망을 통합하면 연간 340억 유로(355억 달러)의 경제적 이익이 발생한다는 분석에 따라서다. 영국은 6개국과 해저 케이블을 연결했고, 추가로 더 건설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설치됐다. 방글라데시는 지난해 11월부터 인도의 전력망을 통해 네팔의 전기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 대륙에서도 전력망 통합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의 문제는 기술이 아닌 '지정학적 요인'에 있다. 인접 국가 간 외교적 마찰이 전력 공급 중단 같은 '전기의 무기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자,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에 25%의 세금을 부과하며 맞대응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발트해 해저 케이블이 정체불명의 세력에 의해 반복적으로 훼손되기도 했다. 이에 올해 초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러시아와 반세기 넘게 연결돼 있던 브렐(Brell) 전력망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말레이시아는 자국 내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이유로 2021년부터 약 2년 간 싱가포르로의 재생에너지 수출을 금지했던 적도 있다. 전력 수출입이 외교 갈등에 따라 언제든 중단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후 프랑스는 스페인에 1500메가와트(MW)의 긴급 전기를 공급하면서 복구를 지원했다. 이처럼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도 불구하고 각국은 '전기 동맹'을 통해 전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사실상 '전기 섬'에 가깝다. 지리적으로 대륙에 붙어 있지만, 북한과 단절된 상태여서다.

북쪽으로 전력을 주고받을 수 없어 전력망을 연결하려면 남쪽(일본) 또는 서쪽(중국) 해상으로만 가능하다. 2010년대에는 한·중·일 간 전력망을 연계하자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프로젝트가 논의된 적이 있다. 당시 관련 부서가 새로 만들어질 정도로 진지하게 검토됐지만, 한·중·일 간 정치적 갈등과 에너지 주권 문제 등으로 인해 좌절됐다.
최근에는 부유식 해상풍력 기술이 도입되며 일본과 한국의 해상 구조물이 가까워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양국이 해상에서 물리적으로 인접하게 되면, 전력망 연결의 가능성도 다시 커질 수 있다. 일본 관서 지역의 전력 주파수는 한국과 같은 60Hz로, 기술적 연계 장벽도 낮은 편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