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의 한 슈퍼마켓에서 80대 여성 A씨가 사과 5개를 몰래 챙기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튿날인 11일에는 같은 동네 대형마트에서 80대 여성 B씨가 곶감을 훔치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이들은 마땅한 직업 없이 홀로 생활하는 노인들"이라며 "생활고에 따른 범죄였고 피해 금액이 1만~2만 원 수준으로 작아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 넘겼다"고 설명했다.고령화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생계를 위해 절도를 저지르는 '노인 장발장'이 늘고 있다. 지난해 검거된 절도범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로 집계될 만큼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복지 제도 접근성을 높이고 독거노인 등 고립 가구에 대한 정기적인 점검에 나서는 등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인 절도의 대부분은 식료품 등을 노린 생계형 범죄로 분석된다. 지난달 종암경찰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 넘겨진 6건 중 3건은 80세 이상 고령층의 생계형 절도였다. 경미범죄심사위원회는 경찰과 외부 위원이 경미한 범죄에 대해 초범 여부, 반성 태도, 피해자와의 합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훈방 조치하는 등 처벌 수위를 조정하는 제도다. 경찰 관계자는 "노인들이 마트, 편의점, 무인점포 등에서 식료품 등을 훔치는 사건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부산에서는 마트에서 초코파이 1박스, 크라운산드 1박스 등 6차례에 걸쳐 6만7000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친 노인이 법정에 섰다. 동종 전과가 있었지만 법원은 생계형 범죄라는 점을 감안해 징역 2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작년 11월 창원 진해의 한 마트에선 78세 노인이 한개에 2000원짜리 단팥빵 두 개를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10년 전부터 뇌경색을 앓아온 이 노인은 아내와 단둘이 지내오며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023년 기준 38.2%로, OECD 평균(14.2%)의 약 3배에 이른다. 전국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약 246만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101만5000여명으로 전체의 41.3%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복지정보 접근성이 낮은 독거노인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고 분석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생활수급, 기초연금, 노인 일자리 등 생계 지원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고령층이 여전히 많다"며 "이들이 생활고 끝에 절도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65세 이상 독거 노인은 2021년 176만9260명에서 지난해 219만6738명으로 24.2% 늘었다.
최성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려운 노인 가정을 상시 모니터링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동사무소나 구청 등 행정기관이 통반장이나 자원봉사자 등과 협력해 촘촘한 복지망을 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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