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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현대 산업을 떠받치는 정밀·단조·종합금속,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뿌리

입력 2025-05-13 14:51   수정 2025-05-13 14:52

“뿌리가 썩으면 가지도 열매도 흔들린다.”

이 오래된 격언은 첨단 기술이 중심이 된 오늘날의 한국 산업 생태계를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과 같은 첨단 기술 산업의 육성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것을 지탱하는 뿌리가 필요하다.

그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정밀금속, 단조, 특수강, 종합금속 등으로 대표되는 금속 기반의 기초소재 산업이다. 이 산업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국가의 거의 모든 산업 활동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산업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 산업의 ‘기초체력’이자, 미래 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산업 안보’의 핵심이다. 디지털 전환, ESG 경영, 탈탄소화, 그리고 공급망 재편 등 모든 산업의 흐름이 변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금속 기반 기초소재 산업은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물리적 인프라로 존재한다.

소재강국을 향한 진짜 조건: 기반기술에 대한 시선 전환

정부는 ‘소재강국’을 지향하며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상은 나노신소재나 반도체 웨이퍼 등 고부가가치 첨단소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이런 분야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이는 전체 산업 생태계의 일부만을 조명한 것이고, 산업을 지탱하는 전반적인 구조를 놓치는 근시안적 시각일 수 있다.

첨단 부품조차도 기초소재와 기계 부품, 단조 강재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수소경제의 핵심이 되는 저장탱크는 고정밀 단조기술과 특수강 없이는 아예 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풍력발전의 대형 회전체, 전기차의 경량 프레임, 고속철 차축, MRI 장비의 골격 구조, 심지어 로켓의 연결 플레이트까지도 모두 정밀금속 가공 기술 없이는 설계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첨단기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기반기술 위에서 성립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수치로 보는 금속산업의 존재감

금속산업은 한국 제조업 전체 생산액의 약 14%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업체 수 또한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특히 2023년 기준으로 국내의 태양광, 풍력 등 그린에너지 설비의 많은 부분은 국산 금속소재와 가공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OECD가 발표한 철강산업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일본, 미국, 독일에 이어 4위(85.7점)를 기록했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며, 그 중심에는 금속 기반 제조 역량이 자리하고 있다.

보이는 것만 지원하는 정책의 위험성

우리나라의 제조업 비중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25~27%에 이르며, 이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책적 지원과 연구개발(R&D) 투자는 반도체, 인공지능, 이차전지 등 ‘보이는 산업’에 쏠려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정밀금속, 단조, 열처리 같은 기초 산업군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중소·중견기업들은 산업 생태계의 후방에 머무르고 있다. 이와 같은 기초소재 및 금속가공 산업군은 디지털 전환, ESG 경영, 탈탄소화, 리쇼어링 등 거의 모든 산업 트렌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중요성은 평가절하되고 있고, 그에 따른 산업 생태계의 균열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산업을 지탱하는 기업들: 조용한 뿌리의 힘

정몽석 회장이 이끄는 현대종합금속은 지난 50여 년 동안 조선, 자동차, 플랜트, 건설 분야에서 산업 현장과 함께 성장해 왔다. 고품질 용접재료를 국내외 조선소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며 대한민국 조선업의 도약에 조용히 기여해왔고, 최근에는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맞춘 제품 개발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홍영철 회장이 이끄는 고려제강은 1945년 창립 이래로 특수강선 분야에서 기술 고도화를 지속해왔다. 현재는 초고층 빌딩, 교량, 크레인, 선박, 광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부품을 공급하며, 국내 로프 시장 점유율 46%를 차지하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풍산은 국내 최대 규모의 정밀단조 기업으로, 1만 2천 톤급 대형 프레스와 첨단 단조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 항공우주, 방산, 전자산업에 필요한 정밀 부품을 생산하며 높은 신뢰를 얻고 있으며, CAD/CAM 기반 설계부터 후처리까지의 품질관리 체계를 일관되게 구축하고 있다.

1966년에 설립된 한일단조는 방산 지정업체로서 상용차용 액슬하우징, 크랭크샤프트, 커넥팅 로드 등 고강도 부품을 생산하며 국내외 상용차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1954년에 설립된 대한제강은 국내 3대 전기로 제강사 중 하나로, 철근 중심에서 출발해 최근에는 철강 산업을 기반으로 한 에너지 순환 신사업에도 도전하고 있다.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한 산업 - 신뢰성과 숙련의 문제

코로나19 팬데믹과 글로벌 공급망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산업이 중심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국내에 여전히 금속 기반의 제조 역량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단조 기술은 인공지능으로 설계를 도울 수는 있지만, 섭씨 1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0.1mm 이하의 오차로 금속을 정밀 성형하는 일은 지금도 인간의 숙련된 기술과 장비의 신뢰성에 달려 있다.

정밀금속, 종합금속 기술의 축적과 혁신은 대한민국 제조업의 숨은 동력이자,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실질적인 방어선이다. 이 기술들이야말로 우리가 다른 나라와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산이다.

이제 필요한 것: 산업 뿌리로서 금속산업의 재조명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초 제조업에 대한 인식 전환이다. 정부와 산업계는 금속 기반 기초소재 산업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정책적 보호와 체계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제도적 보호 강화,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R&D 투자 확대, 숙련 인력 양성 체계 구축, ESG 경영 전환 지원, 공공조달 시스템의 개선 등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조치는 단순한 산업 육성을 넘어서, 대한민국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과 안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결론: 금속이 약해지면 산업은 무너진다

우리가 타는 지하철의 차축, 고속도로를 연결하는 플레이트, 병원의 MRI 프레임, 우주로 향하는 로켓의 체결 장치까지.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정밀하게 가공된 금속이 있다. 정밀금속, 단조, 종합금속 산업은 더 이상 과거 산업의 유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산업을 움직이는 기둥이며, 우리 미래를 지탱할 핵심 인프라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다. 기술의 꽃을 오래 피우기 위해서라도, 산업의 바닥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기초를 단단히 다져야 할 때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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