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2022년부터 2035년까지 예측되는 ‘다중 적응증’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GLP-1 수용체 작용제처럼 다양한 질환에 적용 가능한 약물들이 등장하며 시장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초기 돼지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던 일라이 릴리가 현재 시가총액 80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제약사로 성장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투자자인 아치벤처파트너스의 밥 넬슨은 미래 신약 개발이 단순한 질병 치료를 넘어 예방 및 질병 진행 역행 기술 개발, 그리고 의료 시스템의 수직적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상위 5개 테크 기업의 시가총액이 약 14조 달러에 달하는 반면, 상위 5개 바이오 기업의 시가총액은 약 2조 달러 수준에 머무르는 현실은 바이오 산업이 안고 있는 높은 리스크를 반영한다. 테크 기업들이 독자적인 플랫폼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제약사들은 직접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화이자의 ‘화이자포올(PfizerForAll)’, 일라이 릴리의 ‘릴리다이렉트(LillyDirect)’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환자와 의료진을 연결하고 약물 배송, 진단 검사 예약 등을 지원하며 ‘고객직접판매(D2C)’모델을 강화하는 추세다. 향후 10년 내에는 신약 개발, 진단, 보험 등을 통합해 시가총액 1조 달러에 달하는 바이오 기업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기업은 개인 맞춤형 치료를 직접 소비자에게 제공하며, 기존 제약사는 물론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이나 대형 보험사가 그 주인공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5월 12일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의약품 행정명령은 제약 산업에 또 다른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만약 의약품 가격 인하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특히 혁신 신약의 수익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전략 수정 및 투자 방향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이는 특정 분야의 바이오 기업에게는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 및 비용 증가 등의 파장을 동반할 수도 있다.
한국 바이오텍은 어떤 틈새 시장을 공략해 생존하고 발전해야 할까. 신약 디자인 단계부터 진단과 치료제의 연계, 나아가 보험 시스템과의 포지셔닝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 빅파마들이 아직 취약한 부분을 채우는 전략이 절실하다. 현재 로슈와 같은 빅파마가 진단과 신약 개발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완벽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환자의 가상 임상 데이터와 공간전사체학 등을 활용해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고, 환자 임상 집단을 정밀하게 정의해 신약 디자인 단계부터 병리 진단 데이터를 적용하는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환자의 치료 반응을 사전에 예측하고 질병의 진행 경과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여 개인 맞춤형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미 빅파마들은 임상 성공률을 제고하기 위해 조직병리, 세포병리, 공간생물학 등을 AI 등 첨단 기술과 접목해 단순한 증상 완화를 넘어 질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한국 바이오 기업들에게도 혁신적인 전략 수립을 요구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세계 빅파마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한국 바이오텍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역량 기반의 틈새 시장을 발굴하고 선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