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4일 유럽 최대 공조기기 업체 플랙트그룹을 15억유로(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며 조(兆) 단위 인수합병(M&A)을 재개한 것은 미래 먹거리 발굴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의 신사업 시계는 2010년 이건희 선대 회장이 발표한 ‘5대 신수종 사업’(태양전지·배터리·조명·바이오·의료기기)에 멈춰서 있다. 이번 인수합병을 계기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시대’를 대표할 미래 먹거리 발굴이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은 국정농단 사태로 M&A 추진 동력을 잃으면서 지난 8~9년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삼성의 M&A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레인보우로보틱스(로봇), 옥스퍼트 시멘틱 테크놀로지스(AI), 소니오(메드텍)를 잇달아 인수했다. 지난 7일에는 미국 마시모그룹의 오디오 사업 부문을 3억5000만달러(약 5000억원)에 사들였다. 이번 플랙트그룹 인수를 통해 2017년 하만 인수 후 8년 만에 대형 M&A에 시동을 걸었다.
M&A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빅테크만의 전쟁터가 된 ‘AI 패권’ 경쟁에 끼어들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산업계는 삼성전자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분야로 AI와 로봇, 전장(자동차 전자장비) 분야를 꼽는다. 반도체는 각국이 ‘국가전략산업’으로 보호해 인수가 쉽지 않아서다. 삼성은 그동안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과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인피니언, NXP 등의 인수 후보로 거론됐지만 하나도 성사되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M&A 시장의 큰손으로 다시 등장하면서 로봇, AI 등 미래 성장동력 분야의 후속 M&A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차기 빅딜 분야로 로봇이 꼽힌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인수하면서 미래 로봇 개발을 전담하는 ‘미래로봇추진단’을 설치했다. 삼성이 휴머노이드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추가 인수합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AI 패권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만큼 삼성이 AI 기술 선점을 위해 M&A를 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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