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우리는 ‘뷰카(VUCA)’의 시대에 살고 있다. 뷰카는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세계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고 예측이 어려운지를 상징한다. 글로벌 팬데믹, 지정학적 갈등, 기후변화, 기술 혁신의 가속까지 앞으로 세계는 더욱 뷰카 시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투자 환경 또한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금융 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다시 한번 변화와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해방의 날’이라 명명하며 시장의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관세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금융 시장을 혼돈에 빠뜨렸다. 주식 시장이 하락하고 국채 금리는 상승한 반면, 안전자산인 달러는 하락했다.
불확실성이 촉발한 금값 고공행진

이와 대조적으로 대표적인 위험 회피 자산으로 여겨지는 금 가격은 올해 신고가를 경신했다. 천정부지로 뛰던 금값은 최근 숨 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시장은 향후 금 가격의 추세적 상승을 전망한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주도하는 금 수요가 상승의 주된 요인이다.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심과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은 금으로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견고해 보였던 미국 자산에 대한 신뢰도 급격히 약화되는 모습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미국 달러와 국채 시장은 다소 회복되는 모습이지만, 투자자들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불렸던 미국 자산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융 불확실성이 고조될 때 달러는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며 가치가 상승하지만, 4월 초 관세 발표 이후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달러 대비 다른 선진국 통화의 상대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의 금융 시장 내 독보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분산·가치·장기 투자…
긴 호홉의 대응 필요
기저에 놓여 있는 변동성은 투자 심리를 위축시킬 수 있겠지만, 불확실성의 시간이 영원할 순 없다. 이럴 때일수록 시장을 예측하려는 잰 걸음보다는 검증된 방식으로 긴 호흡의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는 분산이다. 자산과 투자 지역, 매수 시기 등을 분할하고 포트폴리오로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산 배분은 분산투자가 핵심이다.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이 적절히 조합된 포트폴리오를 통해 변동성을 낮추고 꾸준한 수익을 위한 투자의 여정을 지속할 수 있다. 국가별로 비중을 달리해 투자하는 것 또한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 분산투자를 하는 대표적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인 ‘뱅가드 토털 인터내셔널 스톡(VXUS)’의 경우 미국 시장이 급락하는 와중에도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하며 높은 헤지 효과를 나타냈다. 또한 시기를 분산하는 적립식 투자는 매수 타이밍을 예측할 필요가 없고, 평균 투자 단가를 낮춰주는 효과(cost averaging)를 기대할 수 있다.
둘째는 본연의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다. 시장은 뉴스에 반응하고 가격은 매일 등락을 반복하지만, 기업의 가치는 실적과 성장 가능성에 기인하고 내재된 가치가 높은 기업의 주가는 높은 변동성에도 중장기적으로 우상향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실제 국내 주식 시장의 경우 가치투자 전략을 추구하는 액티브 공모펀드들이 연초 이후 코스피 수익률을 웃도는 성과를 내고 있다. 글로벌 자금 흐름을 살펴보면 가치주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ETF ‘뱅가드 밸류(VTV)’에 올해 1분기에만 33억 달러가 순유입되며, 지난해 순유입액의 약 6배를 넘어섰다.
마지막은 장기 투자다. 워런 버핏은 “복리는 10년 이상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에게만 보상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자산이지만 이를 활용해 수익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지난 30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를 살펴보면, 하루에 5% 이상 오르내린 날은 고작 43일뿐이다. 7500일이 넘는 거래일 중에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또한 지수 출시일 이후 현재까지 연평균 수익률 약 11%를 기록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 단기적으로 몇 년간 폭락하더라도 7년 6개월이 지나면 전고점을 회복했다.
즉, 투자 직후 폭락을 겪는 최악의 경우일지라도 7년 6개월 이상 S&P 지수에 장기 투자를 했더라면 손실을 볼 일이 없었다는 얘기다.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매일의 변동 폭이 내 포트폴리오에 미치는 영향도는 줄어든다. 가장 확실한 투자법은 ‘우량 자산에 오랜 시간 투자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원칙 중심 ETF로 포트폴리오 짜

장기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변동성을 감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잘 대응할지 전략을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홀로 고공 행진을 했던 미국 증시 상승세가 주춤하고 유럽, 중국 등 다른 주요국 증시가 선전함에 따라 올해는 특히 자산 배분 전략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스스로 전략을 세우기 힘들다면 명확한 투자 콘셉트가 세워져 있고, 이미 분산이 잘 돼 있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방어력이 뛰어난 ETF를 유형별로 살펴보자.
자산배분형 ETF
투자 성향에 따라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에 동시에 투자할 수 있는 자산배분형 ETF는 가장 편안한 접근 방법이다. 최근 몇 년간 테마형 ETF에 밀려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시장 변동성이 심화되면서 투자자들의 눈길이 자산배분형으로 향하고 있다. 특히 연금 자산에서 편입 수요가 증가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투자하도록 설계된 타깃형 상품들이 눈에 띈다. 연금 투자에 적합한 ETF로는 타깃데이트펀드(TDF)와 타깃리스크펀드(TRF)를 들 수 있다.

TDF는 은퇴 시점에 맞춰서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투자 비중을 글라이드패스(자산 배분 곡선)에 따라 자동 조정하는 유형이다. TDF ETF는 기존 TDF 펀드의 주요 기능을 갖고 있으면서, 매매 편의성과 투자 접근성을 높인 상품이다. TRF는 주식 등 위험자산과 채권 등 안전자산의 투자 비중을 사전에 정하고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유지한다. 투자 성과에 따라 비중이 바뀌면 리밸런싱을 실시해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도 방어력이 뛰어난 특징이 있다.

사전에 정해진 비율이 아니라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자산 비중을 전환하되 좀 더 직관적인 포트폴리오를 추구한다면 RISE글로벌자산배분액티브(461490)도 좋은 솔루션이 될 수 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의 ‘올웨더(All Weather)’ 전략을 기반으로 한 상품으로 세 가지 기초자산인 미국 대형주(30%), 국내 종합 채권(55%), 금(15%)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 5월 13일 현재 순자산이 약 2800억 원으로 국내에 상장된 자산배분형 ETF 중 가장 큰 운용 규모를 가지고 있다.
배당형 ETF
성장 가능성과 탄탄한 펀더멘털에 기반한 배당주에 투자하는 전략도 유효하다. 배당형 ETF는 자산을 증식시키며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이다. 배당금을 재투자하면 복리 효과를 통해 자산을 좀 더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고, 배당금이 일정하게 증가하면 이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 수단이 될 수 있어 장기적인 투자 시 중요한 요소다. 미국의 대표 고배당 ETF인 슈드(SCHD)의 경우 국내 투자자들이 5월 첫째주에만 약 3300만 달러를 매수하며 그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버퍼형 ETF
버퍼(buffer)의 사전적 의미는 ‘완충제, 완충 장치’다. 손실 폭을 제한하는 동시에 최고 수익률도 캡(CAP)이 씌워져 있는 수익 구조를 가진다. 많이 알려진 커버드콜 ETF처럼 파생상품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안정적인 버퍼를 마련하는 구조화 상품이다.
버퍼형 ETF는 2016년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이후 총운용자산(AUM) 전체 규모가 최근 5년 내 30배 이상 성장했으며, 현재 미국 시장 규모가 90조 원(2025년 2월 말 기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미국 주식 시장 변동 폭이 컸던 2022년을 기점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79%에 달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3월 S&P500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아웃컴 기간(버퍼 수익 구조를 위해 옵션 포지션을 구축한 날로부터 해당 옵션의 만기일까지의 기간)이 1년으로 설정된 버퍼형 ETF가 최초로 상장됐다.

환매 시점이 정해진 투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롤러코스터 같은 미국 증시와 관세로 인한 경제 침체 우려로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면 하락 리스크를 일부 방어할 수 있는 버퍼형 ETF가 유용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포트폴리오 내 변동성 완화가 기대되는 다양한 ETF는 내 자산을 지켜줄 방패가 돼줄 것이다.(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으로 소속 회사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윤현경 KB증권 WM투자전략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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