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콘텐츠 제작사들이 연이어 일본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단순 판권 판매를 넘어 현지 제작 시스템에 깊숙이 파고들어 현지어 드라마와 오리지널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단계로 확장했다. 일본은 콘텐츠 수명이 길고 부가사업이 활발한 시장으로 침체 위기를 맞은 K 제작사들에게 새로운 활로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SKY 캐슬' 등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하며 협력을 지속해온 SLL과 TV아사히는 오리지널 드라마 '마물'을 공동 제작했다.
지난 4월 18일 TV아사히에서 첫 방송된 '마물'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여성 변호사(아소 쿠미코)가 살인 사건 용의자인 유부남(시오노 아키히사)을 만나 금단의 사랑에 빠지는 러브 스릴러로, 인간의 사랑과 욕망, 질투와 용서 등의 심리가 정교하게 얽힌 스토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JTBC '옥씨부인전'을 만든 진혁·최보윤 PD가 1∼2화 연출을 맡았고, SLL 산하 레이블 퍼펙트스톰필름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리메이크를 맡았던 세리 에리카가 각본을, '칠석의 나라'를 제작한 다키 유스케와 '간을 빼앗긴 아내'의 니노미야 다카시가 감독을 맡았다.
현재 한국의 드라마 케이블 채널 드라마큐브와 JTBC2 등에서도 '마물'을 볼 수 있다. 아울러 글로벌 OTT 프라임 비디오(Prime Video), 일본 현지 OTT인 티바(TVer), 아베마(ABEMA), 텔라사(TELASA) 등에서도 스트리밍 되고 있다.
박준서 SLL 제작부문대표는 "'마물' 공동 제작을 시작으로, 콘텐트 제작과 관련해 한일 양국의 장기적인 협업이 가능한 기반을 만들어 새로운 지적재산(IP) 발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오는 6월부터 일본 현지에서 드라마 3편을 연달아 선보인다.
다음달 27일 아마존 프라임비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한국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아닌 네이버 시리즈 원작 웹소설을 일본 정서에 맞게 새롭게 각색한 일본 오리지널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친구와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여자가 회귀해서 복수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일본판 주인공은 영화 '바람의 검심' 시리즈의 사토 타케루와 드라마 '오오쿠', '파도여 들어다오' 등을 통해 라이징한 코시바 후우카다.
한국판 연출을 맡았던 손자영 PD와 CJ ENM 이상화 PD가 일본판에도 공동 책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드라마 '더 글로리', '비밀의 숲'을 만든 안길호 감독이 연출을, '1리터의 눈물'를 쓴 오오시마 사토미가 극본을 맡았다.
이어 7월에는 일본 지상파 방송사 TBS와 손잡고 만든 한일 합작 드라마 ‘하츠코이 도그즈’가 공개된다. 거대한 비밀이 숨겨진 반려견을 둘러싸고 만나게 된 한국인 재벌 3세와 일본인 수의사, 그리고 변호사가 갈등 속에서 우정을 쌓고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힐링 로맨스 드라마로 나인우, 키요하라 카야, 나리타 료 등이 출연한다. tvN '소용없어 거짓말'을 연출한 스튜디오드래곤 노영섭 PD가 공동으로 맡았다.
8월에는 스튜디오드래곤의 자회사 지티스트가 제작한 일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울 메이트’가 전 세계에 공개된다. '베를린-서울-도쿄'를 오가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로, 배우 옥택연과 이소무라 하야토가 출연한다. 소설가, 각본가, 감독, 크리에이터로 일본 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하시즈메 슌키가 각본과 연출을 맡는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이번 프로젝트들을 통해 한국, 미국, 일본 세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글로벌 제작 스튜디오로 거듭났다. 관계자는 "단순 판권 판매나 투자 방식이 아니라, 현지어로 직접 제작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IP를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기상어', '베베핀' IP를 보유한 더핑크퐁컴퍼니는 애니메이션의 나라에 도전장을 냈다. 더핑크퐁컴퍼니는 TBS 텔레비전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올 3분기 첫 협업 콘텐츠를 방영할 계획이다.

투자배급사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이동통신 회사 KDDI와 협업한다.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는 KDDI와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영화의 일본 진출을 앞당기고, 한·일 문화 교류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플러스엠은 "영화 콘텐츠 협력 및 유통 활성화를 위해 기획·투자부터 유통·마케팅까지 폭넓은 인프라를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 한·일 동시기 극장개봉 및 공동 마케팅 캠페인, 한·일 리마스터링 상영회 공동 주최, IP(지식 재산) 공동 개발 및 리메이크, 콘텐츠 분야 인적 교류 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우 한소희·전종서 주연 '프로젝트 Y'와 우치다 에이지 감독의 최신작 '나이트 플라워'는 한일 동시 개봉을 추진 중이다.
한일 양국의 콘텐츠 협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방송사 중심의 내수 기반 시장으로 제작비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로 낮은 편이다. 반면, 한국은 스튜디오 중심의 글로벌 확장형 제작 시스템을 갖췄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제작비가 한국보다 낮아 단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히트 콘텐츠의 수명이 길어 부가사업으로 돌아오는 수익이 크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굿즈, 애니메이션, 뮤지컬, 팝업스토어 등 콘텐츠 IP의 2차 활용이 활발하다. 이 관계자는 "일본에서 한 번 터지면 수명이 엄청나게 길게 간다"며 "메가 히트 IP가 되면 컨버팅이 가능해지면서 수익적인 부분으로 크게 돌아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 K-콘텐츠 해외진출 현황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이 '가장 자주 보는 한국 드라마' 1위는 2002년 방영된 '겨울연가'로 나타났다. 2위는 2019년작 '사랑의 불시착'이었다. 20년이 지난 드라마가 여전히 회자될 만큼 충성도 높은 소비층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K 콘텐츠 제작사의 글로벌 IP 역량과 현지화 노하우가 결합되면 새로운 흥행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일본 사업자들은 세계적 히트작이 한국에서 많이 나왔으니 궁금증이 많은 상황이고 한국 제작자들은 내수 기반의 일본 시장이 매력적이다"라며 "같이 일하는 일본 크리에이터와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경첨이 누적이 되면 히트작이 나올 확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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