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금호타이어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의 원인으로 원자재 과열, 정련설비 과부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장 근무자들 사이에서는 수개월 전부터 반복된 설비 결함이 있었음에도 조치가 미흡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생고무 특성상 작은 불씨에도 대형 화재로 번질 수 있는 고위험 공정이었던 만큼 ‘예고된 인재’라는 비판이 나온다.
고무정련 공정은 타이어의 원재료인 생고무를 가열·압축해 원하는 성질로 가공하는작업으로 고온·고압 환경에서 이뤄지는데 고무가 발열을 일으킬 경우 설비 주변의 고무분진이나 기름 성분에 불씨가 옮겨붙을 수 있다.
또, 생고무는 점성이 높고 연소 시 불꽃이 깊게 번지는 특성이 있어 불이 붙으면 일반적인 물 분사로는 쉽게 꺼지지 않는다. 화염이 내부까지 스며들기 때문에 고성능 화학약제나 포소화약제를 동원해야 진화가 가능하다.
특히 압축 과정 중 기계 내부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거나, 낡은 설비의 냉각 기능이 저하된 경우 발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화학물질이 섞인 고무 재료는 연소 시 화염 확산 속도도 빠르다. 다만, 화재 발생 직전까지 해당 공정이 정상 가동 중이었고, 현장에선 특이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화재가 진압되는 대로 정련 설비 과열이나 분진폭발 가능성, 전기설비 합선 등 복합적 요인을 염두에 두고 정밀 감식에 나설 전망이다. 국과수와 합동으로 설비 내부 발화 흔적, 회로 차단기 작동 여부, 점화 지점 등을 중심으로 분석할 것으로 보인다.

공장 한 관계자는 “방화문 스위치가 고장 났다는 보고가 이전부터 있었고, 정비 요청도 올렸지만 회사 측이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금호타이어는 “현재는 사고 수습에 집중하고 있으며, 방화문 작동 여부 등은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화재 초동 대응이 미흡했다는 주장도 있다. 직원들은 “대피방송이 없었고, 경보음도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400여 명이 개별적으로 탈출했고, 다리 부상을 입고 고립된 직원 1명은 40분 후 구조됐다.
노후 설비 문제도 조사의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은 가동 30년 이상 된 공정 라인이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만일 정기 안전점검을 통해 고장 가능성이 발견됐음에도 무시됐다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적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화재 원인이 산업안전 수칙 미준수나 반복된 결함 무시 등 인재일 경우 법적 책임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타이어와 광산구청은 화재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민원과 보상을 위한 접수 창구를 마련할 예정이다. 보상 범위와 절차는 추후 협의와 조사를 거쳐 확정된다. 이번 화재로 총 96세대 176명의 주민이 대피했다.

금호타이어는 한국·중국·미국·베트남 등 4개국 8개 공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생산체계를 운영 중이다. 국내에는 광주·곡성·평택공장이 있으며, 중국 남경·천진·장춘, 미국 조지아주, 베트남 빈증성에도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광주공장의 일시 가동 중단으로 인해 특수 타이어를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업계에선 항공기 타이어 납품 지연, 국내외 완성차 업체 수요 조정 등 후속 영향도 우려하고 있다.
정일택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는 이날 오전 광주공장 화재 현장을 찾아 사과문을 발표하고 “화재 피해 복구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대피 중인 인근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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