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고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을 받아들이면 시내버스 운전기사에게 지급해야 하는 인건비가 연 3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작년 12월 대법원이 ‘재직자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해 연장·야간근로 수당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19일 서울시청에서 브리핑을 열어 “임금체계를 개편하지 않으면 통상임금 때문에 각종 수당이 15% 인상된다”며 “서울시에 1700억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조 측은 대법원 판결로 인상되는 수당은 그대로 지급하고 기본급을 8.2%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임금 인상률이 약 25%에 달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시내버스노조에 임금체계 개편 협상을 요구했지만 노조 측은 오는 28일 총파업을 예고한 채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노조가 몽니를 부리는 이유는 ‘노조가 동의하지 않으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없다’는 근로기준법 규정 때문이다. 이는 경영계가 법정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 도입을 크게 우려하는 요인이다. 정치권은 6·3 대선을 앞두고 인건비 급증이 불가피한 정년 연장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임금체계 개편 논의는 실종된 상태다.
대법 '통상임금 판결' 후폭풍…'무책임' 정치권에 기업들 불안

10여 년 전인 2016년 법적 정년을 60세로 연장했을 때도 이 규제가 발목을 잡았다.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로 임금 조정 방안은 제도화하지 못했고 임금피크제 도입만 권고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후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자 노동계가 ‘과반수 근로자 동의 없이 시행됐다’며 줄소송에 나섰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했다.
현재 서울시와 버스노조 간 임금 협상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이런 구조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서울시가 19일 내놓은 ‘시내버스 노조 파업 팩트체크’에 따르면 작년 12월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로 4호봉 기준 서울 시내버스 기사의 연장·야간근로 수당은 80만원 오른다. 여기에 노조가 주장하는 기본급 인상률 8.2%를 적용하면 2025년도 월급은 639만원으로 작년 513만원에 비해 25% 인상된다. 전체 인건비는 3000억원 급증한다. 오른 인건비는 서울 시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시내버스 사업의 누적 부채가 1조원에 달하는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다는 전제 아래 수립된 기존 임금체계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는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다. 바뀐 판례에 따라 인상된 임금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수당 체계를 조정하려는 시도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이 단순한 지방자치단체 노사 갈등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한다.
이에 따라 경영계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정년 연장과 주 4일제 추진에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법과 제도에 따라 성실히 임금체계를 설계했어도 하루아침에 바뀌는 정부 정책이나 판례 변화에 따라 예기치 못한 추가 비용 등 충격이 발생해도 보호해줄 아무런 완충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년 연장이나 주 4일제를 도입하려면 임금·근로시간의 합리적 조정 방안부터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임금체계와 근로시간 등이 담긴 회사 내규인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조, 그런 노조가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제94조 1항 단서 규정
곽용희/이호기/오유림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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