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죽을까?”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말로 고백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뭔 이런 섬뜩하고 끔찍한 고백이 있냐며 소스라칠 것이다. 놀랍게도 천재 시인 이상이 사랑에 빠진 여인에게 고백하며 실제로 한 말로 전해져 내려온다.
이상이 이런 이상한 고백을 한 여인은 변동림이다. 이상은 이화여대에 다니던 변동림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폐결핵으로 일본에서 사망하기 전 3년 동안 변동림과 함께 살았다.
이상이 죽고 난 뒤 변동림은 또 다른 천재 예술가와 연을 맺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와 결혼했다. 김환기의 호였던 ‘향안’을 받아들여 이름도 김향안으로 바꿨다.
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이상과 김환기의 뮤즈이자 뛰어난 문학가였던 변동림의 동화 같은 삶을 그린다. 2020년 CJ문화재단 창작 뮤지컬 지원 사업인 ‘스테이지업’에 선정돼 2022년 초연했다. 2024년 제8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을 휩쓴 작품이다.
작품은 주인공의 인생을 변동림으로 살던 삶과 김향안으로 살던 시간으로 나눠 묘사한다. 두 명의 배우가 각각 변동림과 김향안을 연기하는 ‘2인 1역’ 형식이다. 이상을 사랑한 변동림의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김환기와 결혼한 김향안의 시간은 반대로 미래에서 과거로 흐른다.
광인 취급을 받으며 창작의 고뇌에 휩싸인 천재 시인 이상이 건강과 정신이 모두 무너져 내리자 변동림은 옆에서 보듬어준다. 이상은 결국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변동림은 상처 입은 채 홀로 남겨진다. 이후 화가 김환기를 만나지만 또다시 예술가와의 사랑으로 상처받을 운명이 두려워 주저한다. 마침내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고 김향안으로 다시 태어나 아픔을 극복하고 여생을 보낸다. 김향안이 남긴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는다(Les gens partent mais, l‘art reste)”는 말처럼 두 천재의 예술혼은 변동림과 김향안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해진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위대한 예술가의 일생을 짧게 압축해 감정의 섬세함은 아쉽다. 김향안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하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돼 감정 서사가 촘촘하지 않다.
이처럼 빠르게 전개되는 서사에도 무대와 음악이 감동을 더한다. 화가와 시인이라는 두 예술가의 작품을 테마로 무대를 꾸민다. 이상을 상징하는 공책과 김환기의 그림을 활용한 영상 효과가 아름답다. 뮤지컬어워즈 음악상 수상작답게 배우 네 명이 만드는 코러스도 강점이다. 공연은 서울 혜화동 예스24스테이지에서 6월 15일까지 열린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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