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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 부담을 전세계 소비자가 분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소매업체들이 미국 관세 비용을 전세계 시장 전반에 분산해 인상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영국 중앙은행은 관세에 의한 인플레이션 영향을 주시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샌들 제조업체인 버켄슈톡과 보석상 판도라는 미국 관세 비용을 시장 전반에 분산해 인상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미국내 가격만 대폭 인상할 경우 최대 시장인 미국내 매출 타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버켄슈톡의 최고재무책임자는 지난주에 전 세계적으로 "한 자릿수 초반" 가격 상승이 미국 관세 영향을 상쇄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도라의 CEO인 알렉산더 라식은 덴마크 회사가 전세계적으로 가격을 인상할 지, 아니면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가격을 인상할 지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독일 본에 있는 컨설팅 회사 시몬 쿠허의 파트너 마르쿠스 골러는 "기업들이 관세를 어떻게 분배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외 제조업체는 “미국 시장에서만 크게 올릴 수 없으니 유럽과 다른 시장에서도 조금씩 올리겠다”고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가 최근 아마존닷컴의 관세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 표시와 월마트의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을 비난하며 올리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도 비용 분산 전략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거대 기업인 월마트는 관세에 대응해 가격을 인상해야한다고 말했다가 트럼프로부터 “관세를 감수하라”는 비난과 명령을 받았다. 이에 앞서 아마존 닷컴은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을 표시하려던 계획이 알려지자 백악관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고 계획을 철회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을 피하려는 소매업체들은 미국외 시장에서 가격 인상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 입지가 확보된 대형 소매업체는 이 같은 비용 분산 전략으로 미국의 높은 관세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시카고대 부스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교수인 장피에르 뒤베는 "백악관으로부터 관세 때문에 가격을 인상했다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을 것이고, 전세계에서 다 올렸다는 걸 입증할 수 있다면 방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국적 소매업체들이 관세에 따른 고통을 미국 바깥으로 확산시키면, 다른 국가의 인플레이션까지 부추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미시간 주립대학교 공급망 관리학과 제이슨 밀러 교수는 “소매업체가 소비자가 가격에 덜 민감한 다른 나라나 다른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가격에 민감한 국가와 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에만 있는 회사라면 미국내 판매 가격을 12% 인상해야 할 수도 있지만 글로벌 기업이라면 다른 시장에서도 가격을 올림으로써 8% 정도 인상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 은행 총재 앤드류 베일리는 이달 초 "관세율에 대한 구별을 하지 않고,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가격 책정 솔루션을 부과하겠다'는 글로벌 기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우리는 그 점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럽 17개국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타코 패션의 CEO 마르티노 페시나는 미국 소매업체가 중국 공장의 주문을 취소하면서 중국 공급업체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했고 운송 비용도 하락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것은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지, 그리고 그 인플레이션이 유럽으로 확산될지 여부”라고 말했다.
대형 소매업체 중 일부는 미국 외 지역에서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디다스는 “관세 때문에 미국 외 지역에서 가격을 인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비욘 굴든 CEO는 지난달 말 실적 발표후 투자자들에게 "관세에 대한 논의는 미국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ECB 이사회 위원인 이사벨 슈나벨도 관세가 장기적으로 유로존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슈나벨은 이 달 초 "기업들은 투입 비용의 충격을 보상하기 위해 관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상품의 가격을 인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은 일부 회사가 관세를 이용해 비용 상승보다 더 크게 가격을 인상해 2021~2022년 팬데믹 기간 동안 인플레이션이 급증했던 것과 유사하게 이익을 늘릴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의 고객들은 제품 총비용 중 어느 부분에 관세가 부과되는지, 적용되는 관세율이 얼마인지 알기가 매우 어렵다. 팬데믹 때처럼 이 같은 정보 비대칭이 악용될 수 있다”고 유타대 경제학 교수인 할 싱어는 지적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12개월 물가상승률예상치는 4월에 6.7%로 뛰어 올랐다. 이는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유로존에서도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이슨 밀러교수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예상할수록 기업들이 가격을 인상할 여지가 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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