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문인 미국의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학교를 옮기거나 최악의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하버드대를 상대로 외국인 학생 등록을 받지 못하도록 결정하면서다.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에 ‘반(反)유대주의’를 근절하는 내용의 교육정책을 강요해왔다. 하지만 하버드대가 이를 거부하자 하버드대의 학생 및 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EVP) 인증을 취소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X(옛 트위터) 게시글에서 “하버드대가 법을 준수하지 않음에 따라 SEVP 인증을 상실했다”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는 하버드대가 캠퍼스 내에서 폭력과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중국 공산당과 협력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며 “대학이 외국인 학생을 등록시키고 그들이 내는 많은 등록금으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기부금을 불리는 혜택을 누리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특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버드대는 올바른 일을 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며 “그들은 이를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SEVP는 미국 국토안보부 이민세관단속국(ICE) 산하 프로그램으로 미국 내 학교가 합법적으로 외국인 학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승인하는 역할을 한다. SEVP 인증을 받은 학교는 비자 발급용 서류 ‘I-20’ 혹은 ‘DS-2019’를 발급한다. 외국 학생들은 이 서류를 가지고 미국 비자를 신청하고, 입국 후 체류를 할 수 있는 합법적인 신분을 유지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하버드대의 갈등은 2023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차별 반격하자 미국 대학가에선 반전 시위가 확산했다. 처음엔 하마스를 비난하던 여론이 대다수였지만,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이 계속되면서 점차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 가운데 하버드대를 비롯한 주요 명문대들은 반전 시위의 진원지로 꼽혀왔다. 이 때문에 하버드대를 지원하던 유대인 억만장자들이 기부금을 끊는 일도 이어졌다. 하버드대 동문이면서 유대계 헤지펀드 ‘큰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회장은 미국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 클로딘 게이에 대한 퇴진 운동을 벌였으며, 게이는 지난해 1월 사임했다.
유대인들의 정치적 지원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도 올해 1월 취임 이후 하버드대 내 반유대주의와 DEI(다양성·포용성·형평성) 정책 등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DEI 정책 폐기를 비롯해 입학정책과 교수진 채용에 정부가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하버드대에 요구했다. 그러나 하버드대는 ‘학문의 자유’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특히 하버드대는 트럼프 행정부의 교칙 변경 요구 공문까지 공개하면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26억 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연구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하버드대 외국인 학생들도 자신의 거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하버드대에 다니는 한 한국인 유학생은 “유학생들은 학교의 풍부한 재정 지원을 통해서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학교를 떠나야 하면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생긴다”며 “(트럼프 행정부에 반대하는) 학교의 방침에 동의하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철폐될 때까지 휴학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나와야 하는 우수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김선민 다트머스대 사회학과 교수는 “유럽이나 중국은 학문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하버드대 사태로) 올여름에 (학교에서) 나올 인재들을 잡으려고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워싱턴=이상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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