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이 수백억원을 들여 어렵게 유치한 해외 인공지능(AI) 인재들이 한국에 도착한 지 몇 달도 안 돼 짐을 싸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복잡한 비자 제도, 정착 지원 부재, 글로벌 기준에 못 미치는 근무환경까지 ‘삼중고’를 겪으면서다. “한국은 인재 유치가 아니라 유출의 허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인재 관리가 안 되다 보니 이들의 탈한국 현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법무부의 ‘등록외국인 지역별·체류자격별 현황’에 따르면 첨단 전문인력(E-7-S2)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은 올 3월 기준으로 23명뿐이다. 작년 같은 달 58명에서 1년 만에 절반 이상이 한국을 떠난 것이다. E-7-S2는 첨단 분야 석·박사급 외국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2023년 도입한 비자다.
지난달 ‘톱티어 비자’를 도입해 일부 조건을 개선했지만, 비자 불안정성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된 상태다. 세계 100위권 대학 졸업, 글로벌 500대 기업 경력, 1억4000만원 이상 연봉 등의 요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탓에 사실상 ‘무늬만 완화’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국내 한 AI 스타트업 대표는 “한국 기업의 평균 연봉 수준을 고려했을 때 베트남 인도 등 개발도상국 출신의 외국 인재에게 억대 연봉을 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미국 싱가포르 등은 취업 비자와 체류·정착을 자연스럽게 연계한 데 비해 한국은 ‘유입’에만 초점을 맞춘 채 ‘정착 생태계’ 구축은 뒷전인 상황”이라고 꼬집었다.대부분의 공공 시스템과 금융 서비스가 내국인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AI업계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전세 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조차 국적을 기준으로 제한돼 마치 ‘거주하는 방문객’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국은 AI 인재 유치와 정착을 동시에 지원하는 전략으로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AI 핵심 인재에게 H-1B 비자 우선 발급과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자 체류 연장 등 다양한 유인책을 제공하고 있고, 중국과 싱가포르도 이민 혜택과 조기 교육 시스템을 결합해 장기 체류 여건을 개선하고 있다. 정책과 생활환경, 사회적 수용성이 맞물려 외국 인재가 ‘머무를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안정훈/최영총 기자 ajh632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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