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제일제당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기존 사업을 정교하게 다듬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 ESG를 단순한 홍보가 아닌 사업 성과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전략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조용히 실천하는 ESG’를 지향하는 CJ제일제당은 식품 산업 본연의 경쟁력에 지속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의 ESG 전략 핵심은 ‘자연에서 자연으로(Nature to Nature)’다. 원재료 조달부터 소비, 폐기에 이르기까지 식품의 전 생애주기에서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제품 개발과 브랜딩에 ESG 요소를 반영한다. 실제로 햇반, 플랜테이블 등 주요 제품군은 전 과정에 ESG 요건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필요 조건이라서다.

제품에 담은 건강·환경
CJ제일제당의 햇반은 ESG 경영이 제품에 어떻게 접목되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CJ제일제당은 2023년 ‘환경을 생각한 햇반’을 출시하며 용기에 바이오 순환(Bio-circular PP) 소재를 25% 적용했다. 기존 제품 대비 탄소배출량을 17% 줄였다. 연간 예상 판매량 기준 탄소저감 효과는 편백나무 약 2100그루 이상이 흡수하는 탄소량에 해당한다.
사용한 햇반 용기를 수거·세척해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체계도 갖췄다. 밀알복지재단 ‘굿윌스토어’ 전국 29개 매장에 수거함을 설치했으며, 소비자가 분리배출한 용기를 세척 인프라를 갖춘 지역 자활센터가 회수·세척해 가공업체에 전달한다. 이후 가공업체가 이를 원료로 재가공해 최종 업사이클링 제품을 생산한다. 2023년 한 해 동안 약 56만 개의 햇반 용기를 회수해 재활용했다.
햇반은 이 같은 ESG 경쟁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매출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햇반 매출은 9146억 원으로, 9000억 원을 처음 돌파했다. 이 중 24%인 2231억 원은 해외에서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84%(1884억 원)는 북미, 특히 미국 시장에서 기록했다. 즉석밥 수요의 세계적 확산과 건강한 식문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매출 성장의 배경이다.

이러한 흐름은 국내 시장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햇반 라이스플랜’을 출시하는 등 웰니스 트렌드에 맞춘 건강 식단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집밥’을 콘셉트로 한 라이스플랜은 출시 5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50만 개를 돌파했다. 기존 웰니스 제품인 ‘햇반 곤약밥’보다 2배 이상 빠른 판매 속도다.
라이스플랜은 저속 노화 식단으로 주목받는 정희원 박사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햇반 렌틸콩현미밥+’와 ‘햇반 파로통곡물밥+’는 각각 삶은 달걀 1개에 해당하는 단백질, 바나나 5개 분량의 식이섬유를 함유해 바쁜 일상 속 균형 잡힌 식사를 돕는다. CJ제일제당은 ‘햇반 솥반’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진공가압살균(PSPS) 기술을 적용해 잡곡의 식감을 개선했다. 향후 라이스플랜을 중심으로 ‘햇반의 집밥화’ 전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플랜테이블’은 CJ제일제당의 ESG 신성장 사업 중 하나다.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K-푸드 확장을 위해 2021년 론칭했다. 식물성 만두 등 제품군을 보유한 플랜테이블은 비건·클린 라벨 트렌드를 반영하면서 온실가스 저감 효과도 입증했다. 핵심 원료인 텍스처드 식물성 단백(TVP)은 육류 대비 탄소배출량이 적은 친환경 식품 소재로 평가받는다.
아직은 국내 매출 비중이 작지만,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수출 전략이 가시화되고 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으며, CJ제일제당은 플랜테이블을 미래성장동력으로 본격 육성할 방침이다. ESG 친화적 제품군이 글로벌 시장에서 ‘패스포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기후에 적응하는 쌀·김·대두

CJ제일제당은 이 같은 공급망 전략을 ‘기후·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원재료 R&D’로 확장하고 있다. 쌀·콩·김 등 주요 원재료의 지속가능한 조달 체계를 구축했으며, 대표 사례로는 고온에서도 품질 저하가 적은 쌀 품종 ‘동행벼’ 개발이 있다. 아산선도농협, 아산시 농업기술센터와 협업해 올해 1만 톤 규모의 ‘동행벼’를 계약 재배로 확보할 예정이다. ‘햇반’의 주원료 중 하나로, 종자 보급부터 재배 교육까지 전과정이 체계화돼 있다.
콩은 기존 손수확 방식에서 기계 수확으로 전환해 생산성과 작업 효율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 단백질 수요 증가에 대비한 수급 안정화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전환이다. 김의 경우 해양환경 변화에 대응해 육상 양식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연중 생산이 가능한 기술개발이 완료되면 향후 해상 양식에도 파급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같은 지속가능한 원료 조달 전략은 글로벌 파트너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CJ제일제당 계열사 CJ셀렉타는 유니레버 식품 부문 자회사 유니레버 알리멘토스와 함께 브라질 세라두 지역 대두 농가를 대상으로 재생 농업 확산에 나섰다. 양 사는 오는 2027년까지 2만ha, 2030년까지 4만5000ha의 경작지를 재생 농업 방식으로 전환하는 ‘레노바 테라(Renova Terra)’ 프로그램에 총 550만 유로(약 86억 원)를 공동투자할 계획이다.
CJ제일제당은 식품 손실 및 폐기물 감축에도 ESG 전략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2020년 대비 2030년까지 손실·폐기물 50% 감축을 목표로 유통기한 임박 제품의 재사용 확대와 부산물 업사이클링 제품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올바로’ 시스템과 ‘CJ 환경안전보건(ESH)’ 시스템을 통해 배출량을 일별로 모니터링하며, 조달·생산·판매 전과정에서 가치사슬별 감축 전략을 실행 중이다. 조달 단계에서는 계약 재배와 수요 예측으로 과잉생산을 방지하고, 생산 단계에서는 재고 관리와 부산물 활용을 통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공급망, 기후 이어 최우선 과제
CJ제일제당은 공급망 전반의 지속가능성 확보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1차 협력사만 1700곳에 달하는 가운데 원재료 채취 단계에서 강제노동 등 인권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공급망 규제 대응이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2019년까지는 ‘공급망’ 이슈가 ESG 경영에서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2021년부터 본격적인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같은 해를 전후로 공급망 운영 및 관리 전략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시작됐다. 2022년과 2023년에는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리’와 ‘공급망 ESG 리스크’가 연속 주요 이슈로 부각되며, 공급망이 단순 리스크를 넘어 ESG 전략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23년에는 공급망 ESG 리스크가 2대 이슈 중 하나로 선정돼 환경·인권·윤리 전반을 포괄하는 통합적 관리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따라 CJ제일제당은 공급망 ESG 리스크 평가 및 실사 체계 운영, 외부 플랫폼을 통한 리스크 스크리닝, 인증 원재료 조달 확대 등 다각적 대응 전략을 실행 중이다. 공급망 지속가능성을 기업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실효성 있는 접근을 이어가고 있다.
글로벌 ESG 규제 확산에 따라 공급망 투명성 확보도 과제로 부상했다. CJ제일제당은 자체 ‘EIQ’ 시스템을 도입해 협력사의 ESG 리스크를 데이터 기반으로 진단·관리하고 있다. 위험도 높은 원재료는 인증 공급처 비율을 높이거나 원산지를 다변화해 대응한다.
현재 팜유는 RSPO 인증 제품 100%를 국내에 공급하고 있으며, 대두와 설탕도 지속가능성 기준을 충족한 원료 사용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물 부족, 기후 리스크가 큰 지역과의 거래에 따른 생산 차질, 가격 변동성 등에 대비해 사전 모니터링 체계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조치는 2025년 시행 예정인 EU 산림전용방지법(EUDR) 등 글로벌 공급망 실사 규제에 대한 선제 대응으로 평가된다. 원산지 추적, 인증 확보, 리스크 모니터링 체계를 조기에 갖춘 덕분에 규제 시행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SG 평가 항목 중 ‘지속가능한 원료 조달’과 ‘공급망 투명성’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CJ제일제당은 ESG와 관련해 핵심성과지표(KPI)를 외부에 본격적으로 공개하진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량적 지표 수립과 경영전략 통합을 병행하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제품 단위 탄소배출량을 분석하는 전과정평가(LCA)는 햇반과 바이오 제품군에서 완료했으며, 향후 주요 제품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비비고’가 담은 ESG

CJ제일제당의 ESG 전략은 제품 개발이나 공정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와의 접점, 즉 브랜드 전략 전반에도 ESG 철학이 내재돼 있다. 대표 사례는 CJ제일제당의 글로벌 한식 브랜드 ‘비비고(Bibigo)’다. 비비고는 ‘정성으로 만든 한 끼’를 시작으로 ‘비비고와 함께하는 맛있는 일상’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확장해왔다.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건강한 식문화, 책임 있는 소비, 친환경 실천 등 ESG 철학을 반영한 문화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초 발표한 ‘비비고 6대 브랜드 트렌드’에 지속가능성을 핵심 가치로 포함시켰다. 비건 제품 확대, 재활용 포장재 도입, 원재료의 지역 기반 조달 등은 브랜드 차원의 ESG 실천 사례다.
디자인과 브랜딩 전략에도 ESG 요소가 반영돼 있다. 전통 음식 ‘비빔’에서 착안한 브랜드 BI는 자연·건강·조화를 상징하며, 브랜드 컬러와 구조는 글로벌 소비자의 감성적 공감대를 고려한 지속가능한 형태로 설계했다. 이 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CJ제일제당의 2024년 미국 식품 매출은 4조7138억 원을 기록했다. 컨설팅업계 관계자는 “비비고는 건강한 글로벌 푸드 브랜드로 리브랜딩에 성공했으며, ESG를 드러내기보다 체험하게 하는 방식이 소비자 신뢰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비비고 만두를 단백질 식단의 대체재로, 김치는 발효 기반의 지속가능 슈퍼푸드로 인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푸드 & 와인〉 등 해외 주요 매체도 비비고를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소개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최근 글로벌 식품 전문가 그레고리 옙을 식품부문 대표로 선임했다. 지속가능 식품 기술과 글로벌 브랜드 운영에 강점을 지닌 그는 비비고 중심의 ESG 경영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cs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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