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 회사채는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주로 연 7% 안팎의 금리를 받길 원하는 개인 ‘큰손’이 많았다. 두 달 전쯤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비우량 회사채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자금조달 위기감이 신용도가 낮은 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업황 부진에 직면한 석유화학과 건설, 2차전지 관련 기업들이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후순위채 발행 자체가 막혔다. 롯데손해보험(A-)이 후순위채(BBB+) 조기 상환(콜옵션)을 미이행하면서다.
그동안 신용등급 BBB부터 A- 사이 기업 중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온 곳은 효성그룹, 두산그룹, 이랜드그룹 등의 주요 계열사다. 요즘엔 섣불리 회사채를 발행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요예측에 나섰다가 소화되지 않으면 오히려 위기를 조장할 우려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회사채 조달이 막힌 기업들은 사모 조달로 내몰리고 있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공모 회사채를 통해 1300억원을 조달했으나 최근에는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자금조달 방법을 바꿨다. 일부 그룹에선 사모사채 외 전환사채(CB) 등으로 자금조달을 시도하다가 결국 오너가 자금을 대여해주는 사례도 있었다.
시장에선 회사채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우량 회사채는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1~4월 발행된 무보증 회사채 가운데 AAA등급 발행 잔액은 3조1300억원, AA등급은 20조7700억원이었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19.0%, 31.5% 급증했다. A+등급 이상 회사채에 대한 기관투자가의 매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발행 규모의 수배에 달하는 금액이 수요예측 시장에 몰리고 있다. A등급(7조4020억원) 발행이 12.1% 줄고 BBB등급(7940억원)이 8.8%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공문주 유안타증권 채권 연구원은 “하이일드 채권 혜택이 사라지면 투자자들의 선호가 우량 채권으로 쏠리며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자칫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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