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 양당 대선캠프가 쏟아낸 테크 공약의 핵심은 AI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지원과 인프라 투자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AI 분야 100조원 투자),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100조원 민관합동펀드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는 뚜렷한 국가적 AI 전략이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예산부터 풀리면 묻지마 자금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과거 주요 창업 지원 사업이 중복 논란에 휘말리고 ‘먹튀’까지 벌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예산 확대가 모든 기업에 좋은 건 아니다”며 “만약 정부 사업을 따지 못한다면 좋은 AI 기술을 갖추고도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가 있다”고 했다.
민간 투자가 위축되며 이미 주요 스타트업의 정부 지원 사업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 따르면 투자 혹한기 극복 방안으로 정부 지원 사업을 택한 창업자 비중이 2023년 24%에서 2024년 49.6%로 두 배 넘게 뛰었다. 해외 시장에서 정면으로 승부를 보는 대신 국내에서 정책 사업을 따내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한국은 공공 주도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며 “기업들이 경쟁을 통해 스스로 강해지면서 시장을 지키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일부 기업 사이에선 오히려 정부발 AI 인프라 사업 참여를 부담스러워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한 대기업 시스템통합(SI) 계열사 관계자는 “정부 사업에 잘못 들어가면 덤터기를 쓸 수 있다”며 “요구하는 것도 많아 계산해보면 결국 손해”라고 했다. 정부 사업에 핵심 인력이 동원되면 신사업 추진에 쓸 에너지를 뺏길 수 있다는 얘기다.
막대한 세금을 써서 한국형 LLM을 개발하는 게 맞느냐를 두고서도 의견이 갈린다. 효용이 없다는 쪽은 어차피 정부발 AI의 경쟁력이 글로벌 빅테크 AI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 과거 국가 주도 통신망이 지지부진했듯 국가가 나서서 국민이 쓸 AI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오히려 민간의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고 한국을 ‘AI 갈라파고스’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자체 LLM을 개발해야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독립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당장 정부가 AI 국가대표 프로젝트 ‘월드 베스트 LLM’ 기업을 올해 선발할 예정이다. 5~10개 내외의 AI 정예팀이 뽑힐 가능성이 높다. 자체 모델을 보유한 LG AI연구원, 네이버, 업스테이지 등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기술(IT)업계는 AI 진흥을 말하면서 플랫폼을 옥죄는 정책 방향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벤처기업협회,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주요 IT 단체 7곳이 모인 디지털경제연합은 최근 성명을 통해 “플랫폼 규제와 AI 진흥은 공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AI산업은 기술을 서비스로 구현해 사용자를 돕는 ‘온 서비스 AI’로 현실화하는데,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규제하면 결국 AI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논리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퇴직연금 등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허용과 인수합병(M&A) 활성화를, 민간 지원 기관인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노동시간 유연화를 제안했다.
고은이/최영총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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