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캐나다 ICV탱크가 최근 공개한 ‘2024 글로벌 미래 산업 경쟁력지수 보고서’를 접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연구개발(R&D) 담당 고위 임원은 이렇게 탄식했다. 5~10년 전만 해도 메모리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뜨는 업종’마다 최강 기업 리스트에 한국이 빠지지 않았는데 최신 리포트에는 8개 분야별 톱10에 든 기업이 80개 중 단 두 곳뿐이어서다. 산업계에서는 대한민국의 첨단산업 경쟁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정부와 기업,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한국식 첨단산업 육성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공지능(AI)이 그랬다. 10개 상위 기업 중 7개(1위 오픈AI, 2위 구글, 3위 앤스로픽)가 미국에서 나왔다. 나머지 셋은 중국(6위 딥시크, 8위 바이트댄스, 10위 텐센트) 몫이었다. 보고서는 “AI 기술 트렌드가 텍스트와 이미지, 음성,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를 통합하는 멀티모달로 전환하면서 미·중을 중심으로 시장 질서가 정해지고 있다”고 썼다. 한국에선 LG, 삼성, 네이버가 16~18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휴머노이드도 미국(톱10 중 5개)과 중국(3개) 천하였다. 보고서는 “휴머노이드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들어갔다”며 중국 유비테크의 ‘워커S’가 비야디(BYD) 자동차 생산라인에 투입된 것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반면 국내 로봇업계는 여전히 똑같은 작업만 반복하는 산업용 로봇 개발에 머무르고 있다.
뇌과학 분야에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최대주주로 있는 뉴럴링크 등 미국 기업이 5개나 이름을 올렸다. 우주·항공 1위도 머스크 창업주가 이끄는 스페이스X였다. 한국 기업은 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없다.
LG에너지솔루션은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5위에 올랐다. 풍력과 태양광, 원자력발전 기업이 상위권에 오른 가운데 유일한 배터리 회사다. 다만 보고서는 “미래 에너지 시장은 배터리가 아니라 소형모듈원전(SMR)과 수소 발전 등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첨단 네트워크 분야에선 삼성전자가 5위에 올랐다. 1위는 중국의 화웨이였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정보기술(IT) 붐’ 때처럼 정부 주도의 규제 완화와 미래 산업 육성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2002~2005년 13조330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초로 전국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하는 동시에 인터넷 콘텐츠 규제를 대부분 없앴다. 벤처투자 펀드를 지원하고 창업보육센터도 늘렸다. 이를 토대로 네이버와 카카오, 넥슨이 태어났다. 반면 최근 AI 분야는 삼성, LG, SK 등 대기업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휴머노이드 분야 상황도 비슷하다. 자금도, 인력도 부족하다 보니 현대자동차 산하 미국 기업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빼면 이렇다 할 휴머노이드 업체가 없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교수는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에 반 발짝 뒤에 있다면, 한국은 그런 중국에 몇 발짝 뒤처진 상태”라며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에 꼭 필요한 분야를 정부와 기업이 함께 선정한 뒤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역전의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섭/신정은/박의명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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