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04일 16:0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물적분할한 자회사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들이 새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고 있다. 대선이 끝난 만큼 이른바 ‘중복 상장’을 규율하는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새 정부와 여당이 조속한 규제 도입을 예고하면서 상장 시점을 미룬 기업들도 늘고 있다.
모회사 주주에 공모주 우선배정 '급물살'?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을 추진하던 주요 기업은 상당수가 최근 상장 계획을 보류하거나 연기했다. 중복상장 논란에 대응하기 위해 모회사 주주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하지만 그와 관련된 법적 기준이 불명확하단 이유에서다.현재 국회에 발의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모회사가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공모 신주의 일부를 기존 모회사 주주에게 우선배정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해왔다. 그는 “암소인 줄 알고 샀는데 송아지는 남의 것이 되는 물적분할을 방치해선 안 된다”며 “신주 우선배정 등 일반 주주 보호 규정을 강화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주식을 현물출자하거나 배당을 확대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공모주 우선배정은 자금 유출이 크지 않다는 점도 기업들이 기대를 거는 배경이다. 자회사 상장을 통해 투자재원을 마련하려는 기업 입장에선 공모주 우선배정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평가다.
IB 업계 관계자는 “모회사 주주 보호 방안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다보니 상장 과정에서 여론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입법이 이뤄지면 물적분할 자회사뿐 아니라 모회사가 상장한 자회사의 경우에도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발의된 법안들 간에도 공모 신주 배정 비율 등에 대한 입장차가 크다.
당초 정부안은 ‘우리사주 20% 우선 배정’ 조항을 준용해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가 IPO로 모집하는 신주의 20%를 배정하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신주 배정 비율은 30~70%까지 높이는 등 제각각이다.
주주 명부 확정 시점도 쟁점이다. 어떤 날짜를 기준으로 우선배정 대상인 모회사 주주를 판단할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제도 변화가 IPO 시장 전반에 파급될 수 있는 만큼 증권사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공모 신주 중 모회사 주주 우선배정분이 새로 생기면 기관투자가 몫이 줄어들 전망이다. 기관 배정 물량이 줄어들면서 수요예측 결과에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신주 배정 비율이 높아질수록 IPO 기업의 몸값을 결정하는 수요예측 결과에 끼치는 영향도 커질 수 있다.
금융당국도 조만간 증권업계 실무진과 간담회를 열고 물적분할 및 자회사 상장과 관련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상장 요건과 주주 보호 조치에 대한 실무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중복상장 논란 속 기업 의사결정 혼란 초래
일각에서는 해당 가이드라인이 생겨도 IPO 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중복상장 논란은 더욱 가중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복상장 논란은 물적분할 여부와 상관없이 모회사가 상장한 상황에서 자회사를 상장하는 사례에 모두 적용되고 있다.물적분할 상장은 기존 사업부를 쪼개는 방식이어서 주주 신뢰 훼손 우려가 크지만, 외부에서 기업을 인수했거나 신설 법인을 상장하는 경우까지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모회사 주주에게 이익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냉정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것을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지, 모회사 주주를 위해 어떤 보호 방안을 내놔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어떠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이후 2~3주 이내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중복상장 논란에 휘말리면 상장 등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됐다.
IB 업계 관계자는 "중복상장 논란을 정리할 규제 도입이나 ‘모범 규준’ 마련이 시급하다"며 "어떤 경우에 모회사 주주 보호 방안을 고려해야 하는지, 고려해야 한다면 어떤 보호 조치를 해야하는지 등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논의를 해야할 시기"라고 말했다.
최석철/최한종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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