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 채굴보다 포도나무 재배를…’
과거 금광 지대로 유명한 에덴밸리 맹글러스 힐(Mengler’s Hill)에 호주 프리미엄 와이너리 ‘바-에덴 에스테이트’가 위치해 있다. 1997년 호주 와인의 전설 밥 맥린(Bob McLean)이 이곳을 사들이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이 와이너리는 ‘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심장부나 다름없는 바로사 밸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고도 500m 안팎 서늘한 기후와 암석 토양이 독특한 테루아를 구성하고 있어 최고급 와인 생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2014년 프랑스 남부 론 출신의 피에르 앙리 모렐(Pierre Henri Morel)이 합류하면서 양조 기술과 테루아 중심의 구세계 특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2015년 밥이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와이너리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다행히 ‘금 채굴보다 포도나무를 끝까지 지켜달라’는 밥의 유언은 잘 지켜졌다. 우여곡절 끝에 바-에덴 에스테이트를 설립하고 2018년 ‘러브 오버 골드’ 시리즈를 공식 출시한 것. 현재는 피에르 앙리와 마이클 트웰프트리(Michael Twelftree, 투 핸즈 와인즈 창업자)가 공동소유자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피에르 앙리의 와인 철학은 독특하고도 분명하다. ‘와인 생산량은 하늘이 결정한다’는 지론에 따른다. 무작정 판매 목표를 올려잡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실제 맹글러스 힐은 남호주에서 가장 높고 매우 건조한 지역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관개시설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연 강수에만 의존해 포도를 재배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산량이 매우 제한적이다.
문제는 러브 오버 골드 인기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주 국내는 물론 미국, 싱가포르, 한국 등 전문가 그룹 중심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 5월 여의도 한 호텔에서 진행된 테이스팅 행사는 피에르 앙리가 직접 맡았다. 1997년 밥이 식재한 포도나무 열매를 사용했다는 ‘러브 오버 골드 그르나슈’의 맛과 향을 가장 먼저 마주했다.
앙리는 “첫잔에서 막 자른 꽃다발을 연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신선하고 상쾌한 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타닌과 함께 특히 장미꽃 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문제는 와인 공급이다. 2001년에는 700병을 생산했으나 올해는 300병에 그쳤다. 2023년에는 아예 와인을 만들지도 못했다. 2~4월 포도 생장기에 날이 가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격 인상은 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생산 원가를 맞췄을까. 불가사의한 일이다.
다음은 ‘러브 오버 골드 오마주’였다. 이 와인의 블렌딩 비율은 그르나슈와 무르베드르 각각 42%, 쉬라즈 16%. 둥근 타닌과 주스처럼 상큼한 맛을 단박에 만날 수 있다. 남부 론 샤토네프 뒤 파프 느낌이다.
앙리는 “과실 향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오크통 사용을 최대한 자제 한다”고 말한다. 포도 본연의 맛과 향을 내는 데 집중했다고. 실제 와인은 500~600L짜리 콘크리트 탱크에서 숙성시킨다. 프리런 주스만을 사용해 비단처럼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라고.
마지막은 ‘에비뉴 투 골드 쉬라즈’로 장식했다. 첫잔을 코에 가져가자 오디, 복분자 등 복합적인 향이 다가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모키, 감칠맛이 잡혔다.
“프랑스 로마네 콩티나 미국 할란 이스테이트를 지향한다”는 앙리는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와인숍에서 와인의 다양성에 빠지고 말았다고.
그는 이어 “역사가 짧은 우리 와인의 시음 적기는 아직 알 수 없다. 대략 15년 후로 생각하지만 구입 즉시 마셔도 좋은 와인을 출시한다”고 말했다.
김동식 와인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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