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킬 무렵, 서울 서린동 SK서린빌딩 앞에 30~40여 명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들의 손엔 ‘SK텔레콤, 위약금 면제 이행하라’, ‘최태원 회장이 직접 책임져라’라고 쓰인 팻말이 들려 있었다. 주변에는 기자도 여럿 있었다.무리의 한가운데는 넥타이를 맨 신사가 서 있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하루 전 ‘여당’ 소속 의원이 된 그를 이른 아침부터 이곳으로 이끈 건 ‘SK텔레콤 정보유출 사태’다. 이 의원은 기자들에게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만나기 위해 왔다”며 “최 회장이 책임지고 SK텔레콤 해킹 피해자에게 (번호 이동에 따른) 위약금 면제를 약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날 최 회장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대신 맞이했지만, 이 의원은 “유 사장에게 드릴 말씀은 다 드렸다. 최 회장이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사장은 “위약금 면제 결정은 최 회장이 아니라 SK텔레콤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의원은 “국민들을 위해 위약금 면제를 관철하겠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해킹 사태의 책임이 SKT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2300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만큼 회사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건 누구나 동의하는 바다. SK텔레콤은 이런 판단 아래 모든 가입자의 유심칩을 무상으로 교체해주고, 피해 발생 시 전액 보상을 약속했다. 위약금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기술정보통부의 법률검토와 민간합동조사단의 조사를 기다리고 있다. 과기부는 청문회를 통해 “아직 위약금 면제와 관련해 법률검토 결과가 명확하지 않다”며 “사업자에게 상당히 심각한 피해가 될 수도 있어서 쉽게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SKT는 조사결과가 나오면 위약금 면제에 대해 이사회가 판단을 내리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이 의원의 요구를 지켜본 한 경제계 관계자는 "관련 절차를 모두 건너뛰고 총수가 ‘월권 행위’를 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아무리 그룹의 총수라고 해도 주식회사의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건너뛰고 재량으로 무언가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는 의미다. SKT는 20만 소액주주가 지분을 들고있는 주식회사다. SKT측은 위약금 면제 시 최대 500만명까지 이탈할 수 있다고 보고있다. 3년간 예상 손실액만 총 7조원 이상이다.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는 사안에 대해 이사회를 무시하고 총수가 마음대로 결정하는건 그 자체로 배임이다. SKT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정부의 법적판단에 따라 회사의 프로세스대로 결정하는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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