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0년 새해 벽두부터 한반도에는 ‘천연두(天然痘)’가 창궐했다. 그해 조선일보는 1월 6일 자에서 “함흥에서 시작된 천연두가 방역 당국의 필사적 방어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새 환자가 생겨나고 있다”며 “현재 누계 532명에 3할에 해당하는 15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전했다. 지금은 낯선 질병인 천연두는 약 100년 전만 해도 이 땅에서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지난 시절에 천연두가 ‘전염병의 대명사’로 불린 만큼 이 질병은 다양한 이름과 함께 우리말에도 흔적을 깊게 남겼다. 천연두는 한자 번역어인데, 그중에서도 의역을 통해 우리말 체계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천연(天然)’이란 말은 사람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가리킨다. 즉 ‘하늘이 이뤄놓은’이란 뜻이 담겨 있다. 거기에 돌림병이란 뜻의 ‘두(痘)’를 붙인 게 ‘천연두’다. 그러니 천연두는 하도 무시무시한 역병이라 하늘의 자비라도 구하는 심정이 반영된, 일종의 완곡어법에 의해 만들어진 말이다.
천연두를 일상에선 ‘마마’라고 부른 것도 의미심장하다. 마마는 ‘상감마마, 대비마마’같이 조선시대 때 임금 및 그의 가족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존대를 나타내는 최고의 경칭이었다. 그만큼 무서운 역병이라 한번 몸에 들어오면 그저 굽신굽신 비위를 맞춰 곱게 나가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손님마마’라 부른 것도 같은 이치다. 손님, 즉 지나가다 잠시 들른 사람처럼 얼른 거쳐 갔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된, 완곡어법에 의한 것이다. 관용구로 “마마 손님 배송하듯”이라고 하면 ‘행여 가지 않을까 염려해 그저 달래고 얼러서 잘 보내기만 함’을 이르는 말이다.
‘두창’ 중에서 비교적 최근 널리 알려진 게 ‘원숭이두창’이다. 지금은 공식 명칭이 ‘엠폭스(MPOX)’로 바뀌었다. 아프리카 발생지인 ‘원숭이두창(Monkeypox)’이 차별과 혐오, 낙인 용어로 인식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22년 이름을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여기엔 수사학적으로 ‘완곡어법’이, 이념적으로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담겨 있다.
완곡어법은 듣는 사람의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쓰는 표현법이다.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하기 위해 관련 있는 다른 말로 돌려 표현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말의 사용에서 인종이나 민족, 언어, 종교, 성적지향, 장애, 직업에 따른 편견이나 차별이 들어가지 않게 하자는 사회적 운동이다. 우리말에도 이미 곳곳에 반영돼 있다. 가령 살색→연주황→살구색, 간호원→간호사, 장애자→장애인, 학부형→학부모, 가정부→가사도우미 등으로 용어가 바뀐 게 그런 사례들이다.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