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이 '현실'이 됐다.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세계 공연예술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에서 작품상·극본상·연출상 등 6관왕을 거머쥐면서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6관왕을 차지했다. 작품상을 놓고 겨룬 뮤지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4관왕)을 제치고 토니상 최다 수상작에 이름을 올렸다. K뮤지컬이 세계 공연예술계 최고 권위의 토니상에서 이같은 성과를 거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번 시상식은 작년 4월부터 1년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뮤지컬과 연극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앞서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난달 1일 작품상과 극본상, 연출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이중 극본상(윌 애런슨&박천휴)과 작사·작곡상(윌 애런슨&박천휴), 무대 디자인상(데인 라프리&조지 리브)을 시작으로 연출상(마이클 아덴), 남우주연상(대런 크리스), 작품상까지 6개 부문을 석권했다. 음향·편곡·조명·의상 부문에선 수상이 불발됐다.
특히 작품상(Best Musical)을 수상한 의미가 크다. 작품상은 '어쩌면 해피엔딩'을 포함해 총 다섯 편이 경합했다. 이 가운데 뮤지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과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는 '어쩌면 해피엔딩'과 마찬가지로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경쟁작이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뉴욕대 재학 시절 인연을 맺은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2014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동 창작한 작품이다. 국내에서 '윌휴 콤비'로 잘 알려진 두 창작진은 2012년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를 시작으로 '고스트 베이커리' '일 테노레' 등 다수의 뮤지컬을 함께 만들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1세기 후반 서울, 인간에게 버림받은 구식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풀어낸 작품이다. 초연 멤버인 배우 전미도(클레어 역), 정문성(올리버 역) 등이 이 작품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선 2016년 300여석 규모의 대학로 소극장에서 초연한 이래 지난해까지 다섯 시즌 공연을 이어갔다.
대학로 흥행작은 브로드웨이도 사로잡았다. 2016년 뉴욕에서 쇼케이스를 열며 브로드웨이 유명 제작자 제프리 리처즈의 눈도장을 받았다. 이후 브로드웨이 진출에 돌입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난해 11월 뉴욕 벨라스코 극장에서 공식적으로 막을 올렸다. 지난 1일까지 매출은 2599만달러(약 354억원), 평균 객석 점유율은 93.8%에 달한다. 객석을 가득 메운 현지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극장을 나서고 있다. 로봇이 겪는 서툰 사랑 이야기가 인류 보편의 정서를 건드리며 '뮤지컬의 고장'까지 울린 것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이날 시상식 전부터 토니상 작품상 수상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았다. 최근 드라마데스크 어워즈, 드라마리그 어워즈, 외부 비평가 협회상 등 주요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휩쓸면서다.
토니상은 의미가 더욱 값지다. 토니상은 영화의 아카데미상, 방송의 에미상 등과 함께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상으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 창작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토니상에서 의상 디자인상을 받았지만, 대학로에서 시작한 뮤지컬이 토니상을 싹쓸이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작가는 이날 수상 직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초현실적(surreal)"이라며 '반딧불이(Fireflies)'라고 부르는 팬들 덕분이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하루종일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정말 놀라운 순간"이라며 "상상도 못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저희를 이렇게 따뜻하게 받아준 공연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애런슨 작곡가도 "공연 초반에는 매우 어려운 시작이었다고 들었는데, 공연계와 팬들이 우리를 구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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