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세계 최고 권위의 연극·뮤지컬상 토니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석권했다. 토니상은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으로 이번 수상은 2020년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견줄 만한 성취로 해석된다. 대중음악에서 시작해 영화, 드라마 등으로 퍼져나간 K컬처 열풍이 이제 뮤지컬로 확장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오늘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또 한 번의 특별한 순간을 맞이했다”고 축하하며 “정부는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한층 더 강화하고 우리 예술가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게 또 세계 속에서 빛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9년 전 서울 대학로에서 처음 공연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에서만 다섯 시즌 연속 무대에 오른 ‘히트작’이다. 뉴욕대 재학 시절 인연을 맺은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2014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함께 제작했다. 두 창작진은 국내에서 ‘윌휴 콤비’로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2016년 브로드웨이 유명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의 러브콜을 받아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했다.
올해 토니상을 휩쓴 ‘어쩌면 해피엔딩’은 브로드웨이의 전형적인 작품과 다른 결로 주목받았다. 가장 독특한 매력은 스토리다. 거대한 서사와 역사적 배경, 화려한 원작이 있는 기존 브로드웨이 작품들과 달리 이 작품은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인간을 위해 개발됐지만 버려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 처음엔 성격 차이로 삐걱거리지만 둘은 올리버의 옛 주인이 살던 제주도로 함께 떠난다. 그 여정에서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버려진 로봇들의 주인을 향한 순애, 쓸모를 다한 존재의 허무 등 철학적인 주제를 담은 이 작품은 특히 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인간의 효용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려 해석된다. ‘로봇이 보여주는 인간보다 더 따뜻한 사랑 이야기’는 그렇게 브로드웨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쓰임을 다하면 버려질 수 있다는 인식, 유효기간이 있다는 슬픔은 인간 모두를 타격하는 지점이다.
지난해 토니상 조명상을 받은 한국계 미국인 김하나 씨(미국명 하나 수연 김)는 “로봇을 통해 인간의 유한한 삶을 얘기하는 보편적인 주제가 통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한국적인 디테일을 살리면서도 브로드웨이 스타일에 맞게 오리지널 버전을 각색한 점도 성공 요인이다. ‘제주(Jeju)’와 ‘화분(hwaboon)’ 같은 표현은 무대 화면에 한국어로 노출되고 실제로도 한국어 발음으로 말한다. 특히 화분은 주인공 올리버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물. ‘플라워포트(Flowerpot)’가 아니라 화분이라는 단어를 말해 한국어 고유의 리듬과 정서를 유지했다. 박 작가는 이날 수상 소감에서 “한국의 인디팝과 미국 재즈, 현대 클래식 음악, 전통적인 브로드웨이를 융합하려고 노력했다”며 “모든 감성이 어우러진 ‘멜팅포트’(용광로)와 같다”고 밝혔다.
한국 버전이 서정성과 내면의 감정을 강조했다면 브로드웨이판은 재즈풍 음악과 미래적 무대를 통해 더욱 세련되게 변모했다. 김소정 뮤지컬 평론가는 “한국 무대가 따뜻하고 서정적이었다면 브로드웨이는 스타일리시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로 재해석됐다”고 설명했다.
제작에 최대 2500만달러(약 340억원)가 드는 브로드웨이 시장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은 적은 출연진(4명)과 간결한 무대 구성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브로드웨이 프로듀서 레이철 서스먼은 “‘어쩌면 해피엔딩’은 적은 수의 출연진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라며 “제작비 부담이 큰 요즘 이 작품은 투자자와 관객 모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라고 밝혔다.
조민선/허세민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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