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는 암스테르담 뮈세윔플레인. 박물관 광장이란 이름답게 구도심과 신시가지를 잇는 이곳엔 예술 애호가들이 탐낼 만한 뮤지엄이 즐비하다. 17세기부터 현대까지 네덜란드의 주요 예술품을 모아둔 국립미술관, 고흐의 명작을 간직한 반고흐미술관, 여기에 현대예술로 벽면을 채운 스테델레이크뮤지엄과 모코뮤지엄까지. 로열콘세르트헤바우오케스트라(RCO)의 공연장 콘세르트헤바우를 더하면 뮈세윔플레인 주변은 그야말로 문화예술의 용광로나 다름없다.
뮤지엄이 서로 이웃한 암스테르담이어서 가능한 전시가 있다. 올 상반기 유럽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전시 중 하나인 안젤름 키퍼와 빈센트 반 고흐의 합동 전시 ‘나에게 꽃들이 어디 있는지 말해줘’(Sag mir wo die Blumen sind)다. 광장 하나를 사이에 둔 반고흐미술관과 스테델레이크뮤지엄은 사상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전시는 1970년대 반전 메시지와 잊혀진 역사를 다룬 작품들로 이름을 날린 독일 화가 키퍼의 작품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1945년 태어난 키퍼는 10대 시절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을 여행했을 정도로 고흐에게 강렬한 영향을 받았다. 두 개 미술관을 연결해 관람객들이 마치 하나의 전시장을 지나는 것처럼 각각의 전시를 키퍼의 작품들로 이었다. 지난 9일까지 열린 합동 전시를 통해 뮈세윔플레인의 매력을 들여다봤다.
1층 기획 전시장에 들어서자 키퍼의 2014년 작품 ‘네버모어’가 관람객을 내려다보듯 압도했다. 유화와 아크릴 물감에 금박을 더해 만든 세로 3.3m, 가로 5.7m의 대작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 ‘갈까마귀’에서 까마귀가 던지는 말인 “네버모어”(절대 아니야)에서 이름을 따왔다. 관람객이 키퍼와 친숙해지는 건 그의 2019년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을 봤을 때다. ‘네버모어’와 비슷한 질감이지만 누가 봐도 고흐가 그린 동명 작품을 떠올릴 만한 구도다. 캔버스에 얼기설기 달라붙은 밀짚들이 소용돌이치는 형상은 고흐의 그림 속에서 휘몰아치듯 흔들리는 구름과 닮았다.
키퍼의 ‘밤의 밀밭’ 속 갈대밭 풍경이 주는 적막감을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다. 이 미술관은 키퍼가 고흐의 행적을 따라 여행한 청년 시절 그린 드로잉들도 전시했다. 상설 전시관 1층에 마련된 고흐의 드로잉, 초상화들과 흐름이 이어진다. 키퍼로 시작해 고흐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나무뿌리들’에 다다르는 동선이다.
반고흐미술관이 고흐 작품을 통해 키퍼를 조명했다면 스테델레이크뮤지엄은 키퍼의 작품세계 그 자체에 집중했다. ‘인테리어’(1981), ‘밤 끝으로의 여행’(1990)은 물론 사진들을 길게 이어 붙여 2층 높이 구조물로 만든 ‘상승하라, 상승하라, 그리고 내려앉아라’(2024) 등을 다른 현대 작품과 함께 전시했다. 눈이 가는 대로 감상하다 보면 현대미술로 감상의 시야가 넓어지는 구조다. 반고흐미술관 수석큐레이터이자 이번 전시를 총괄한 에드윈 베커는 “고흐에게서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현대예술을 보여준 아티스트가 많다”고 밝혔다.
뮈세윔플레인을 둘러싼 미술관들은 각각의 매력으로 가득하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렘브란트의 ‘야경’을 비롯해 네덜란드 주요 화가들의 작품들을 망라한다. 모코뮤지엄은 1시간이면 다 둘러볼 정도로 조그맣지만 작가 구성이 알차다. 뱅크시,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헤이든 케이스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창밖으로 비치는 뮈세윔플레인의 푸른 잔디밭과 콘세르트헤바우의 풍경은 덤이다.
암스테르담=이주현 기자/사진=반고흐미술관·스테델레이크뮤지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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